도둔리 남촌 당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084
한자 都屯里 南村 堂祭
영어공식명칭 Namchon Religious Ritual for the Village Tutelary Spirit in Dodun-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당집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지도보기
성격 마을 제사|공동체 의례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사흗날
신당/신체 당집|당산할아버지 목상|당산할머니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도둔리 남촌 당제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도둔리 남촌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체 의례이다. 남촌마을에서는 당제를 지내고 나서 이어서 거리제와 용왕제를 지내는데, 이러한 구성은 산신·당산 등을 위하는 상당제와 샘·장승·돌탑·신목 등을 위하는 하당제를 함께 모시는 유형으로서 충청도 지역의 마을 신앙에서 흔히 나타난다.

[연원 및 변천]

어느 날 바닷물이 밀려들면서 집 한 채가 떠밀려 왔는데, 현재 신체로 모시는 목상이 집에 봉안되어 있어 떠밀려 온 집을 당집으로 삼고 당제를 모셔 왔다고 전한다. 1940년대까지는 흙집에 기와를 얹은 형태였으나, 2009년에 현재의 형태로 신축하였다. 중선(重船)[큰 고기잡이배]를 부리던 시절에는 남촌, 요치도둔리에 속한 8개의 자연 마을이 ‘도둔 8리’라 하여 함께 당제를 지냈으나 중선 사업이 중단되면서 지금은 남촌마을만의 당제로 거행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집은 마을 입구 도로변에 있는데, 과거 바닷물이 밀려들어도 유일하게 물이 차지 않는 고지대였고, 당집이 떠밀려 와서 당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집에 관한 최초 보고 기록에는 1940년대까지는 흙담에 기와를 얹은 단칸집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후 두 차례 변경되었고, 2009년에 현재의 형태로 건립되었다. 현재의 당집은 전면과 측면 두 칸 규모에 기와를 얹은 전통 한옥 구조물이다. 당집 내부에는 6당을 모셨는데, 가장 왼쪽은 수당이라 하여 최고의 예우를 하는 대상이며 나머지는 명칭이 정확하지 않다. 중앙에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의 목상이 봉안되어 있다.

[절차]

당제를 주관하는 이는 당주라 부른다. 2010년까지는 당제를 마치고 나서 당기(堂旗)를 대잡이가 잡아 신의 뜻을 듣고 이듬해에 맡을 당주를 선출하였으나, 지금은 이장이 맡는다. 또, 과거에는 당굿은 마을 내에 거주하던 영신(靈神)[여성 독경자 또는 무당] 2명이 함께 주관하며 비념[비손]으로 진행한다. 영신이 모두 사망하였기에 최근에는 충청남도 보령군의 무녀를 초빙하여 선굿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당제의 절차는 당오르기, 당굿[당맞이, 제물 차리기, 당제 소지 받기, 대내림], 거리제, 용왕제의 순서로 거행한다. 거리제와 용왕제를 지낼 때는 과거 중선을 부리던 시절에 불렀던 배치기소리인 「덕타령」을 곁들인다.

[현황]

남촌마을 주민들은 전통을 보존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여 여전히 제사 비용을 걷어 도둔리 남촌 당제를 지내고 있다. 당집 안에 봉안된 목상은 마을 제당에 드물게 봉안된 당할머니·당할아버지의 신체이기에 문화 자산의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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