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두레놀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027
이칭/별칭 호미씻이,백중두레먹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7월 15일[백중날]

[정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백중날에 두레 김매기를 마치고 두레를 결산하며 행하는 놀이.

[개설]

전통사회의 공동노동 조직체인 두레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김매기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 김매기인 만물매기를 끝내고 나면 두레패원들은 ‘호미씻이’라 하여 하루를 잡아 모임을 가지고 두레를 결산한다. 이때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어 먹으며 어울려 논다.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호미씻이는 음력 7월 중에 오는 칠석날이나 백중날에 주로 시행되었는데, 백중날에 행하는 호미씻이를 백중두레놀이 또는 백중두레먹이라 한다. 때로는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어 먹고 나서 행하는 놀이만을 백중두레놀이라 부르고, 하루 전체의 풍속을 백중두레먹이라고 한다. 곧 백중두레놀이는 백중두레먹이 때에 행하여지던 놀이의 하나인 셈이다. 이러한 백중두레놀이는 남성이 중심이 되어 풍물을 들고 나와 연주를 하면서 춤추고 노는 가운데 두레패원들 모두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식으로 진행된다.

[연원 및 변천]

백중두레놀이 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세기 무렵에 이르러 공동노동 조직체 형태의 두레와 유사한 사례가 발견되고 서천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 1950년대 무렵까지도 두레가 존재하였음이 확인된다. 백중두레놀이를 행하는 백중은 음력으로 7월 15일, 7월 보름을 말하는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기록에 따르면 불교에서 유래하여 승려나 불교도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명절로 전승되어 왔다. 민간에서는 백중이 한 해의 중간쯤에 오는 절일이며, 삼짇날이나 단오처럼 여유를 누리고 휴식을 즐기는 날로 여겨진다. 이 무렵이 시기적으로도 한여름 더위가 절정을 이루었다가 물러가는 시점이고 김매기와 같은 중요한 노동 과정을 마무리한 시기여서,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고 여러 과실과 음식을 마련하여 먹고 놀던 풍속이 백중두레놀이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절차]

백중두레놀이 는 전개 과정이 단순하다. 하나의 마을이 놀이 중심에 설 때는 놀이패가 서로 합을 맞추어 풍물 연주를 한다. 그리고 흥이 절정에 이르면 길놀이를 하는 사례도 있다. 보통은 두레먹이를 하는 장소 또는 인근에서 풍물을 치며 논다. 여러 두레가 함께하는 합두레먹이 형태로 이루어질 때는 백중두레놀이의 내용도 다양하게 된다. 이를테면 마을의 두레패들이 풍물놀이 경연을 펼치는데, 각각의 마을에서 고안한 여러 풍물놀이 판제를 시연하며 기량을 자랑한다. 또 개인들 간에도 장구재비, 북재비 등의 개인놀음 기량을 자랑하며 경쟁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예전에는 서천 전 지역에서 두레 노동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김매기 때 힘을 발휘하였다. 서천 지역 김매기는 아시매기[애벌매기] 후에 열흘이 지나서 두벌매기[이듬매기]를 하고 벼가 길게 자라면 만물매기를 하는데, 아시매기와 두벌매기는 호미를 사용하고 마지막인 만물매기는 손으로 진행하였다. 두레 노동은 특히 만물매기 때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두레가 중단되었다가, 해방되고 나서 1950년대 무렵에 다시 두레가 구성되었으며, 또 일부 마을은 1960년대 언저리까지 두레 형태의 공동 노동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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