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밟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014
이칭/별칭 지신밟이,마당밟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의례|민속놀이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대보름

[정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정월 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마을 풍물패가 집집을 돌며 가정의 안녕과 운수 대통을 빌어 주는 놀이 성격의 의례.

[개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 전승되는 지신밟기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하여지는 전통적인 민속놀이이자 세시 의례이다. 지신밟기는 마을 풍물패가 집집을 돌면서 땅을 다스리는 신령[지신(地神)]과 여러 가신(家神)을 풍물과 노래 등으로 달래며 가정의 평안과 건강, 운수 대통을 빌어 주고, 풍물패를 맞이하는 집주인은 음식이나 돈으로 사람들을 대접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지신밟기는 주로 정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이루어지는데, 보통은 마을 주민들의 상의로 길일을 정하여 행하며, 가구 수가 많은 경우 이틀에 걸쳐 행하기도 한다. 서천 지역에서 지신은 해당 민가의 터주를 의미하는데, 터주는 가정의 여러 가신 중 하나이기도 하므로,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터주 이외의 주요 가신들에게도 치성을 드린다. 이를테면, 부엌의 조왕에게 식복(食福)[먹을 복]을 빌고 대청 앞 성주에게 가정의 평안을 축원하는 식이다. 1960년대 무렵까지도 서천 지역에서는 많은 마을이 지신밟기를 행하였다고 하는데, 각 마을마다 주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초상을 치르거나 출산을 하는 등의 부정이 있는 가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집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였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지신밟기 가 언제부터 유래하였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지신밟기에 관한 옛 기록으로는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이옥(李鈺)이 쓴 『봉성문여(鳳城文餘)』가 전하여지고 있다. 『봉성문여(鳳城文餘)』의 기록은 이옥이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지역에 유배되었을 때 지신밟기로 보이는 마을 행사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전하여 듣고 행사 광경을 글로 남긴 것이다. 당시 마을 행사에는 징, 북 등을 든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민가에 들어가 놀이를 벌이면 그 집에서 소반에 쌀을 담아 문 밖으로 나온다.”라고 밝히고 있다.

서천 지역 지신밟기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천 지역에서는 마을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을 밟아 주는데, 이때 해당 민가의 주부가 양푼에 쌀을 담아 상 위에 올려놓는다. 쌀의 양은 살림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절차]

서천 지역에서 지신을 밟는 순서는 대체로 우물의 용왕, 부엌의 조왕, 장독대의 터주, 대청의 성주 순으로 진행된다. 가장 먼저, 해당 민가를 들어가면서 문의 신에게 출입을 알리고, 이어서 샘이 있는 가정의 경우 물가로 가 용왕을 대상으로 놀이를 펼치며 물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하는 덕담을 읊조린다. 그다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가 조왕에게 가정의 식복이나 화재 예방을 기원하는 덕담을 한다. 그러고는 장독대로 이동하여 터주에게 가족의 건강, 농사의 풍년 등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대청의 성주에게 가족의 운수 대통이나 재물 복을 기원한다.

이렇게 지신밟기를 마치면 해당 가정의 주부가 음식과 술을 내어 대접한다. 일부 가정의 주부는 마당 가운데에 상을 놓고 상 위에 쌀이 담긴 양푼이나 그릇을 놓는다. 이러한 쌀이나 기타 재화는 가신에게 올리는 공양인데, 지신밟기를 끝낸 풍물패가 가지고 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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