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35
한자 宋基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 8월 27일연표보기 - 송기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5일 - 송기주 군산 시내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송기주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6월 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0년 3월 26일연표보기 - 송기주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송기주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송기주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지도보기
활동지 군산 시내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묘소 송기주 묘소 - 경기도 파주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송기주(宋基周)[1890~1950]는 1890년 8월 27일 충청남도 서천군 서남면 옥남리[현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송기주는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발발한 직후 귀향한 김병수로부터 「독립 선언서」를 받아 보는 한편 서울의 시위 상황을 듣게 되었다. 이에 군산영명학교[현 군산제일고등학교] 교사 박연세, 이두열 등과 함께 군산 장날인 3월 6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시위 계획을 협의하였다. 그런데 3월 5일 거사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주도자들이 일제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에 즉시 거사에 돌입하기로 하여 3월 5일 군산영명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군산 시내로 행진하였다. 송기주는 학생들을 시켜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며 시위를 독려하게 하였다. 하지만 시위 해산을 위하여 출동한 경찰에 의하여 시위대는 해산되고 주도 인사들은 연행되었다.

송기주는 시위 동지들과 함께 피체된 뒤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등으로 6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 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연이어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송기주는 1950년 3월 26일 사망하였다.

[묘소]

송기주의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송기주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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