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17 |
---|---|
한자 | 金三石 |
영어공식명칭 | Gim Samse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판교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민영 |
출생 시기/일시 | 188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4월 - 김삼석 이소선 의진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7월 19일 - 김삼석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김삼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판교리 -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판교리![]() |
활동지 | 충청남도 - 충청남도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1885년 무렵 충청남도 비인군(庇仁郡)[현 서천군] 동면(東面) 판교리(板橋里)에서 태어났다. 가계와 신상, 성장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활동 사항]
김삼석(金三石)[1885~1909]은 1885년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판교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6월 헤이그 밀사 파견을 빌미로 7월에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어 의병 전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김삼석도 1908년 4월 이소선 의진에 가담하였다.
이소선(李少仙)은 서천군 문장면 선봉리에서 이도일(李道一)과 함께 의진을 결성하였고, 1908년 2월부터 4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양·남포·비인·서천·공주 등지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4월부터 김삼석은 이소선 의진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과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는데, 이소선이 일제 군경에 체포되자 1908년 6월 하순 무렵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김삼석은 귀향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08년 7월 19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방조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09년 9월 항소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김삼석은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삼석의 공적을 기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