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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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學淳 |
영어공식명칭 | Seong Haks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효자.
[가계]
성학순(成學淳)[1753~1817]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이조판서 성담명(成聃命)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능참봉을 지낸 성시돈이다.
[활동 사항]
성학순은 1753년(영조 29) 서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부모에게 지극한 정성을 보였고, 「평사십리(平沙十里)」라는 시를 짓는 등 문예에도 능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55세에 병이 들어 자리를 보전하고 눕자, 아버지의 병을 고치고자 노력하였다.
하루는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겨울이라 잉어를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성학순은 이틀 밤낮을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그 뒤 연못에서 뛰어오르는 커다란 잉어가 있어 잡을 수 있었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아버지에게 달여 주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가 구하기 어려운 뱀과 참외 등을 먹고 싶어 할 때도 곤경을 무릅쓰고 구하였으며, 추운 겨울에는 아버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아버지의 옷을 입고 있다가 따스해지면 벗어 주었다고 한다.
성학순은 아버지 성시돈이 사망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마치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고 한다. 성학순은 1817년(순조 17)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888년(고종 25) 지역 유림의 천거로 성학순은 효자로 정려되고 사헌부감찰에 추증되었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곧바로 정려각을 건립하지 못하다가 1890년(고종 27) 후손 성동원(成東原)이 지금의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 297-10에 성학순의 효자 정려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