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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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敬仁 |
영어공식명칭 | Noh Gyeong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추모 시기/일시 | 1688년 - 노경인 효자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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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한산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
거주|이주지 | 한산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
사당|배향지 | 노경인 정려문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단상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교하 |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효자.
[가계]
노경인(盧敬仁)[?~?]의 본관은 교하(交河)이다. 아버지는 노격(盧激)이고, 어머니는 고령 박씨(高靈 朴氏)이다.
[활동 사항]
노경인은 한산(韓山)[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태어났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노경인은 부모를 모시고 부여 아미산 아래로 피난하였다. 피난 생활 중 왜군과 맞닥뜨리자 아버지 노격이 의롭지 않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왜군에게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를 본 어머니 고령 박씨가 물에 뛰어들자 노경인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하여 물에 들어갔다가 힘이 다하여 같이 사망하였다. 노경인의 부인 임씨도 남편을 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하여 피신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노격은 충(忠)으로 죽고, 어머니 고령 박씨는 열(烈)로 죽고, 아들 노경인은 효(孝)로 죽어 삼강을 실현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후 사람들은 그들이 빠진 하천을 ‘삼강연(三綱淵)’이라고 하고 옆의 봉우리를 ‘삼강대(三綱臺)’라 이름 지었다 한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효자전 권6의 경인부수(敬仁赴水) 조에는 노경인의 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장면과 함께 어머니와 노경인이 물에 빠져 있는 상태가 그림으로 묘사되었고, 한문과 한글로 해당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노경인은 1688년(숙종 14)에 어머니 고령 박씨와 함께 정문(旌門)을 하사받았다. 노경인과 고령 박씨의 효열 정려는 처음에 서천군 한산면 나교리에 세워졌다가 이후 한산면 단상리로 이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