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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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激 妻 朴氏 |
영어공식명칭 | Noh Gyeok’s wife Bakss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추모 시기/일시 | 1688년 - 노격 처 박씨 열녀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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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한산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
거주|이주지 | 한산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
성격 | 열녀 |
성별 | 여성 |
본관 | 고령 |
[정의]
조선 전기 서천 출신의 열녀.
[가계]
노격 처 박씨(盧激 妻 朴氏) [?~?]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남편은 교하 노씨(交河 盧氏) 노격이고, 아들은 노경인(盧敬仁)이다.
[활동 사항]
노격 처 박씨 는 한산(韓山)[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태어났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편 노격과 아들 노경인, 며느리 임씨 등 일가족과 함께 부여 아미산 아래로 피난하였다. 피난 생활 중 왜군과 맞닥뜨리자 남편 노격이 의롭지 않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왜군에게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를 본 고령 박씨도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물에 뛰어들었고, 아들 노경인은 고령 박씨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모자는 힘이 다하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며느리 임씨만이 당시 세 살이던 아이를 업고 수풀로 도망쳐 가문의 대가 끊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노격은 충(忠)으로 죽고, 고령 박씨는 열(烈)로 죽고, 노경인은 효(孝)로 죽어 삼강을 실현한 곳이라는 뜻으로 이후 사람들은 고령 박씨와 노경인이 빠진 하천을 ‘삼강연(三綱淵)’이라고 하고 옆의 봉우리를 ‘삼강대(三綱臺)’라 이름 지었다 한다.
[상훈과 추모]
1688년(숙종 14) 열녀 고령 박씨와 효자 노경인의 정려가 건립되었다. 정려는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나교리에 처음 세워졌다가 이후 한산면 단상리로 이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