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596 |
---|---|
한자 | 晉州 姜氏 |
이칭/별칭 | jinju K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수환 |
본관 |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
---|---|
입향지 | 서천 - 충청남도 서천군 |
묘소|세장지 | 강위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주항리 산45-5![]() |
성씨 시조 | 강이식(姜以式) |
입향 시조 | 강위(姜渭) |
[정의]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천군의 세거 성씨.
[연원]
진주 강씨(晉州 姜氏)는 고구려의 도원수를 지내며 많은 전공을 세운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충청남도 서천군에 세거하는 진주 강씨는 대부분 고려 때 국자박사를 지내고 진산부원군에 책봉된 강계용(姜啟庸)을 파조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 후손들이며, 강계용의 후손 강회중(姜淮仲)을 중심으로 하는 지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강회중은 고려 우왕 때 보문각대제학을 지내고 최영과 함께 탐라를 평정하였으며, 조선 개국 후 태조 이성계가 병조판서와 도총제 등을 제수하였으나 끝내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조선 시대 생원·진사시 합격자 명단을 기록한 『사마방목(司馬榜目)』에는 한산에 거주하는 진주 강씨 인물인 강석윤(姜錫胤)이 1756년(영조 32) 진사시에 합격한 사실과 서천에 거주하는 진주 강씨 인물인 강세정(姜世靖)이 1783년(정조 7) 진사시에 합격한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입향 경위]
진주 강씨 서천 지역 입향조는 강회중의 10세손 강위(姜渭)이다. 정확한 입향 연도나 경위는 알 수 않지만 서천군의 진주 강씨 후손들은 강위를 입향조로 받들고 있다. 또한, 화양면 대등리에는 임진왜란을 피하여 부여에 정착한 강호영(姜好英)의 후손들이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였다.
[현황]
2014년에 출간된 『서천인의 성씨 그 유래와 분포』에 따르면 서천군의 진주 강씨는 서면 주항리에 18가구, 서면 월호리에 35가구, 화양면 대등리에 13가구, 화양면 죽산리에 10여 가구, 한산면 용산리에 5가구, 기산면 막동리에 10가구, 장항읍 등지에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서천군에 거주하는 진주 강씨는 총 917명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서천군의 진주 강씨 관련 유적으로는 서면 주항리 산45-5에 입향조 강위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