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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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舒川 李夏馥 古宅 |
이칭/별칭 | 서천 이하복 가옥,청암 이하복 고택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57번길 32-3[신산리 12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경동 |
건립 시기/일시 | 19세기 후반 - 서천 이하복 고택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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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44년 - 서천 이하복 고택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2월 24일![]()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4년 - 서천 이하복 고택 사랑채와 행랑채 보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 서친 이하복 고택 전시관 개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서천 이하복 고택 국가민속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서천 이하복 고택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변경 |
현 소재지 | 서천 이하복 고택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57번길 32-3[신산리 120]![]() |
성격 | 고택 |
소유자 | 재단법인 청암문화재단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에 있는 개항기 고택.
[개설]
서천 이하복 고택(舒川 李夏馥 古宅)은 청암(靑菴) 이하복(李夏馥)[1911~1987]이 거주하였던 가옥이다. 이하복의 가계가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에 세거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중반에 이하복의 고조할아버지가 입향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이하복의 증조할아버지 이병직이 현재 위치에 안채 3칸을 건축한 것이 서천 이하복 고택의 시작이다. 이하복은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한 후 보성전문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하다가 1944년 낙향하여 가옥을 보수하고 살기 시작하였다. ‘서천 이하복 가옥’, ‘청암 이하복 고택’이라고도 부른다.
[위치]
서천 이하복 고택은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57번길 32-3[신산리 120]에 있다. 도로변에서 북쪽으로 약 4㎞ 정도 들어간 곳에 있다.
[변천]
서천 이하복 고택은 안채 3칸이 건축된 이후 이병직의 아들 이형규가 안채의 좌우측을 증축하고, 사랑채와 아래채, 위채를 신축하였다. 이후 이형규의 아들 이하복이 낙향한 후 가옥을 보수하였다. 1994년 사랑채와 행랑채를 비롯한 고택 수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형태]
서천 이하복 고택은 안채, 사랑채, 위채, 안광채, 바깥광채, 대문간, 헛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의 안채와 앞쪽으로 ‘一’자형의 사랑채, 안채의 왼쪽에 광채가 있어 튼‘ㅁ’자형 배치가 되었다. 또한 사랑채의 오른쪽에는 2칸 정도 떨어져서 ‘一’자형의 아래채가 있다.
[현황]
서천 이하복 고택은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서천 이하복 고택에서 소장하였던 각종 유물은 총 8,878점이다. 2018년 소장 유물들을 전시한 서천 이하복 고택 전시관이 개관하였다.
[의의와 평가]
서천 이하복 고택은 19세기 후반의 가옥 형태를 보존하고 있으며 고택에 소장된 다양한 유물들은 19~20세기 한국인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