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522
한자 寺址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수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절터.

[개설]

서천 지역에는 70여 개가 넘는 사찰 관련 유적이 확인된다. 전통 사찰이 2개소, 사지(寺址)[절터]가 56개소, 그리고 석탑과 불상 등의 유물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절터가 지표 조사와 관련하여 확인된 것들이어서 시대 편년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백제의 고토였던 서천군은 백제 사비기 중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서 중요성이 부각되는 곳으로 충청남도 서산군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태안군의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예산군의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처럼 바다로 나가기 전 항해의 안전과 상업의 번영을 위하여 종교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관련 사찰 유적의 존재가 추정된다. 또한 백제와 관련하여서는 신검리 요지 유적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건물터가 주목된다.

신검리 요지 유적은 건물터와 생산 유적이 모두 확인되는 곳이며 백제 이후에는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사찰로 각 시기에 걸쳐 변천하는 양상이 확인된다. 백제 어느 시기에 불교가 전래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백제의 수도인 부여에 능사, 정림사지 등 백제 시대 축조 사찰이 존재하는 데다가, 당시 서천 지역의 중요성을 판단하였을 때 관련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검리 요지 유적은 이후 통일 신라 시대에는 ‘운갑사’라는 명문 기와가 확인되고 있어 운갑사[문성왕 7(845)]라는 사찰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고, 이후 고려 시대에는 ‘개복사’라는 명문 기와가 확인되고 있다.

문헌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범우고(梵宇攷)』, 『여지도서(興地圖書)』, 『가람고(伽藍考)』,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효종실록(孝宗實錄)』 등을 통하여 고석사, 영모암, 봉서사, 천방사, 회사, 숭정사, 백운사 등의 사찰이 서천 지역에 있었음이 확인되며, 이러한 사찰을 통하여 서천 지역에 불교 문화가 깊숙히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천 지역에는 국가 및 도지정 문화재가 적지 않다. 성북리사지에 있는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보물]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유사한 형태이다.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은 조성 시기와 불모, 시주자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상 연구자들에게 좋은 학술적 자료가 되고 있다.

이처럼 발굴 조사와 문헌 조사를 통하여 서천 지역에 각 시대별로 불교 유적이 존재하고 있음이 파악되고 있고, 학술 자료로 매우 중요함이 부각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절터들이 지표 조사에 그치고 있다. 관련 유적의 조속한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서천 지역 불교 문화를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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