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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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舒川 玉南里 遺蹟 |
영어공식명칭 | Historic Site Related to seocheon oknam-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백제,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9월 12일~2007년 6월 28일 - 서천 옥남리 유적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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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천 옥남리 유적 -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 |
성격 | 복합 유적 |
소유자 | 충청남도 서천군 |
관리자 | 충청남도 서천군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개설]
서천 옥남리 유적(舒川 玉南里 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에서 군장국가생업단지 지원도로 건설 공사 구간 내에 확인된 유적이다. 날머리·갓재골·원개들·우아실 유적으로 구분하고 1~5지점으로 조사하였다.
[위치]
서천 옥남리 유적은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옥남리 일원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서천 옥남리 유적은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 9월 12일부터 2007년 6월 28일까지[현장 조사 240일]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지역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날머리1 유적에서는 백제 시대 주거지 2기, 수혈 유구 1기, 조선 시대 소성 유구 1기, 움무덤 2기, 회곽묘(灰槨墓) 1기, 날머리2 유적에서는 조선 시대 움무덤 12기가 확인되었다. 갓재골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8기, 소성 유구 1기, 돌널무덤 1기, 원삼국 시대 주구묘 7기, 백제 시대 수혈 유구 1기, 가마 1기, 움무덤 2기, 조선 시대 주거지 1기, 움무덤 105기, 회곽묘 6기가 확인되었다. 원개들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독무덤 1기, 백제 시대 주거지 8기, 수혈 유구 11기, 조선 시대 움무덤 17기, 회곽묘 3기가 확인되었다. 우아실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1기, 독무덤 2기, 원삼국 시대 주구묘 2기, 움무덤 1기, 백제 시대 주거지 2기, 수혈 유구 2기, 독무덤 1기, 조선 시대 수혈 유구 1기, 움무덤 24기, 회곽묘 11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서천 옥남리 유적의 청동기 시대 유구는 주거지 9기, 독무덤 3기, 돌널무덤 1기, 소성 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3~5지구에서 나누어 조사되었으며, 유구별 현황을 살펴보면 주거지는 3지구에서 8기, 5지구에서 1기가 조사되었는데, 높이 34m 정도의 전체 조사 지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리고 전체 9기의 주거지 모두 원형의 평면 형태와 더불어 내부 시설로 타원형의 토광과 내부에 원형 기둥 구멍이 2개 있는 전형적인 송국리형 주거지의 형태이다. 출토 유물은 붉은색 마연토기, 송국리형 토기, 구순각목문토기, 돌끌[石鑿], 돌살촉[石鏃] 등 다수의 토기편과 석기편이 출토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석기를 제작하기 위한 재료로 추정되는 구상의 석재가 파편 상태로 함께 출토되어 공동의 작업장이나 토기, 석기를 제작하는 공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돌널무덤은 높이 34.5m 정도에 능선의 정상 중단부에 있으며, 풍화암반토를 굴착하여 조성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군과 20m 정도 떨어져 있다. 조사 결과 벽석은 이미 유실되었고 경사면 방향을 따라 부석만 남아 있는 상태였으며, 부석은 강자갈을 편평하게 깔아 조성하였다. 내부에서 별다른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부석의 남은 범위와 벽석을 세우기 위한 굴광 흔적 등을 통하여 청동기 시대 돌널무덤으로 추정되었다.
[초기 국가 시대]
갓재골 유적과 우이실 유적에서 초기 국가 시대 유적이 각각 확인되었다. 초기 국가 시대 주구묘는 총 9기이며 높이 32~30m의 평탄 대지면에 조성되었고, 매장 주체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방형의 주구만 확인되었다. 초기 국가 시대 움무덤은 총 1기가 확인되며, 세장말각방형의 형태이고, 출토 유물에서 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가 확인되어 3세기 말의 유물로 판단된다.
[삼국 시대]
서천 옥남리 유적에서 백제 시대 움무덤은 총 3기이며, 세장말각방형의 형태이고, 출토 유물에서 납작바닥의 짧은목항아리[短頸壺]가 확인되는 것을 볼 때 4세기 유물로 판단된다. 생활 유적은 날머리Ⅰ유적[1지점]에서 백제 시대 주거지 2기가 확인되고, 원개들 유적[4지점]에서 백제 시대 주거지 8기가 확인되며, 우아실 유적[5지점]에서 백제 시대 주거지 2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12기가 조사되었는데 유적의 정상부와 사면부에서 주거지 분포가 높은 편이다. 평면 형태는 잔존 양상으로 보아 대부분 [장]방형이다. 내부에는 불자리, 구들, 주공, 벽구,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고 주거지 내부에서 바닥의 일부에 소토면이 형성되었으나 구조물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서천 옥남리 유적에서는 주거지가 대체적으로 높이가 낮은 구릉지에 있고 주거지 주변에 원형 수혈들이 분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천 옥남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생활 유구와 분묘 유구가 모두 확인되는 유적이며, 각 시기별로 재지 세력의 생활 유구와 분묘 유구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