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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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ic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김기섭 |
[정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개설]
충청남도 서천 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활동하였고, 신석기 시대에는 사람들이 강가와 바닷가에 조개무지[貝塚]를 남겼으며, 청동기 시대에는 주거지, 마을, 방어 시설, 고인돌 및 돌널무덤 등의 유적을 여러 곳에 남겼다.
[구석기 시대]
충청남도 서천 지역은 차령산맥의 최남단 경사면, 그리고 군산만 안쪽 금강 하구의 북안에 해당한다. 서쪽은 바다, 남쪽은 강, 동북쪽에는 산맥이 있으므로 일찍부터 인류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지만, 유적 조사가 아직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금강 북쪽에 있는 화양면 추동리와 서해안에 있는 마서면 옥북리에서 찍개, 여러 면 석기 등의 구석기가 출토되었는데, 중기부터 후기 구석기 시대의 다양한 석기가 출토된 공주 석장리 유적과 직선 거리로 약 60㎞ 떨어진 곳이므로, 강가 또는 바다 근처에 막집을 짓고 생활한 한데집터였을 개연성이 있다. 공주 석장리 유적의 제1호 막집을 복원한 결과, 내부 면적은 약 50㎡이고 8~10명 정도가 생활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집 안에는 화덕 자리가 있었다.
서천과 금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금강 남안의 군산 내흥동패총에서는 3만 3000~3만 6000년 전에 형성된 문화층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의 목재편, 씨앗류, 석영제 자갈돌 격지, 여러 면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한반도 중남부의 구석기 시대 생활 유적에서는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삼나무, 은행나무, 목련,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가래나무, 밤나무, 너도밤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오리나무, 서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감탕나무, 버드나무, 사시나무, 쥐똥나무, 녹나무 등 온난성 나무와 한랭성 나무가 모두 발견되었으며, 명아주, 쑥, 백합, 끈끈이주걱, 부들, 여뀌, 붓꽃, 국화 등 다양한 초본 식물 꽃가루가 출토되었다. 동물은 원숭이, 코끼리, 쌍코뿔이, 말, 사슴, 노루, 산양, 물소, 염소, 소, 멧돼지, 오소리, 수달, 족제비, 곰, 털코끼리, 여우, 너구리, 이리, 늑대, 호랑이, 표범, 사자, 하이에나, 토끼, 다람쥐, 쥐, 두더지, 박쥐 등 다양한 뼈 화석이 출토되었다. 이로써 구석기 시대 한반도의 기후 변화 폭이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 시대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당연한 일인데, 앞으로 서천 지역에서도 금강 변을 중심으로 구석기 시대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될 개연성은 매우 높다.
[신석기 시대]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는 대개 토기와 움집 등을 기준으로 전·중·후 3시기로 구분한다. 전기는 기원전 6000~3500년, 중기는 기원전 3500~2500년, 후기는 기원전 2500~1500년경으로 추정하는데, 이와 달리 기원전 2000년경부터를 청동기 시대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은 대체로 강가나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서천 지역에서는 금강 하구의 장항읍 장암리에서 신석기 시대 조개무지가 발견되었고, 마서면 서천 한성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안의 매몰토에서 빗살무늬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인접한 군산 앞바다의 가도·띠섬·노래섬·비응도·오식도 등의 신석기 시대 조개무지에서 참돔·민어·복어·상어·돌고래 뼈와 멧돼지·사슴 뼈가 출토되었으므로 서천 지역에서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다양한 물고기와 조개류를 섭취하며 생활하였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를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하면, 청동기 시대 전기는 덧띠새김무늬토기[突帶刻目文土器]가 나타난 뒤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와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가 유행하였으며, 중기는 토기 아가리가 바깥쪽으로 벌어진 외반구연토기(外反口緣土器)와 구멍무늬토기가 유행하였고, 후기는 덧띠토기[粘土帶土器], 검은간토기[黑色磨硏土器], 두형토기(豆形土器) 등이 유행하였다.
서천 지역의 청동기 시대 생활 유적은 시초면 봉선리, 서천읍 오석리·화금리, 마서면 한성리·옥북리·도삼리, 기산면 월기리·화산리, 화양면 추동리, 마산면 이사리, 종천면 당정리·종천리, 비인면 구복리 등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주거지는 대체로 송국리형 주거지로 평면 형태는 원형 또는 방형이다. 마서면 한성리에서 조사된 주거지의 평균 면적은 37㎡로서, 현재까지 발견된 송국리형 주거지의 평균에 비하여 비교적 큰 편이었다. 한성리에서는 주민이 간돌검 1점과 돌화살촉 24점을 수습하여 신고하기도 하였다. 마서면 서천 옥북리 유적에서는 조개무지와 한데가마[露天窯]가 발견되었는데, 조개무지에는 굴 껍데기가 특히 많았다. 토기 유물은 외반구연토기, 구순각목토기, 적색마연토기 항아리[壺]·사발[碗] 등이 확인되었다.
마서면의 서천 도삼리 유적과 기산면의 서천 월기리 유적에서는 군사 방어 시설도 발견되었다. 서천 도삼리 유적은 평야에 둘러싸인 높이 40여m 정도의 나지막한 독립 구릉 정상부에 있는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인데, 구릉의 경사면을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긴 도랑[溝狀遺構]이 만들어져 있었다. 도랑과 바깥쪽에서는 기둥 구멍이 나란히 놓인 곳도 있어서 방어용 목책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방어 시설은 월기리에서도 발견되었는데, 마을 전체를 에워싸는 형태의 환호였으며, 출입구 시설은 남서쪽에서 2곳, 북동쪽에서 1곳 확인되었다.
고인돌 유적은 80여 기가 종천면 종천리·지석리·산천리 윗말, 서천읍 오석리·남산리·사곡리 절골, 비인면 성북리, 마산면 이사리·지산리, 기산면 월기리·가공리 등 20여 곳에 분포한다. 서천 오석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전기 말에 유행한 무덤인 주구석관묘(周口石棺墓)가 조사되었으며, 무덤 안에서 비파형동검, 이단경식 돌화살촉, 관옥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