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추동리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56
한자 舒川 楸洞里 遺蹟
영어공식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seocheon chudong-r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산101|추동리 산111-10|추동리|봉명리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삼국 시대/백제,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 /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3월 8일~2004년 9월13일 - 서천 추동리 유적Ⅱ·Ⅲ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6월 11일~2004년 11월 2일 - 서천 추동리 유적Ⅰ 발굴 조사
원소재지 서천 추동리 유적 Ⅰ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산101지도보기
원소재지 서천 추동리 유적 Ⅱ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산111-10지도보기
원소재지 서천 추동리 유적 Ⅲ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지도보기|봉명리지도보기
성격 유적지
소유자 충청남도 서천군
관리자 충청남도 서천군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개설]

서천 추동리 유적(舒川 楸洞里 遺蹟)서천-공주 고속도로 건설 공사 구간 내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Ⅰ·Ⅱ·Ⅲ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사 결과 서천 추동리 유적Ⅰ·Ⅱ·Ⅲ을 합쳐 총 청동기 시대 주거지 16기, 움무덤[土壙墓] 12기, 수혈 유구(竪穴 遺構) 2기, 돌널무덤[石棺墓] 10기, 초기 철기 시대 주거지 22기, 원삼국 시대 독무덤 3기, 움무덤 8기,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 3기, 분구묘(墳丘墓) 6기,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5기,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2기, 백제 시대 독무덤[甕棺墓] 6기, 돌덧널무덤[石槨墓] 9기, 돌방무덤[石室墓] 93기, 분구묘 5기, 건물터 1기, 수혈 유구 2기, 움무덤 1기,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 토기 가마 2기, 움무덤 2기,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전기 건물터 1기, 주거지 2기, 고려 시대 움무덤 357기, 돌덧널무덤 5기, 주거지 1기, 조선 시대 건물터 5기, 주거지 20기, 기와 가마 7기, 폐기장 4기, 매납 유구(埋納 遺構) 2기, 구상 유구(溝狀 遺構) 7기, 소성 유구(燒成 遺構) 6기, 수혈 유구 2기, 움무덤 112기, 회곽묘(灰槨墓) 23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생활 유구와 분묘 유구가 모두 확인되는 복합 유적이다.

[위치]

서천 추동리 유적Ⅰ은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산101 일원에 있다. 서천 추동리 유적Ⅱ는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 산111-10 일원이며, 서천 추동리 유적Ⅲ은 서천군 화양면 추동리부터 봉명리 일원에 있다.

[청동기 시대]

Ⅰ지역에서는 13기의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확인되었고, Ⅱ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3기가 확인되었다. Ⅲ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3기와 돌널무덤 10기가 확인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백제 시대 분묘 유구]

Ⅰ지역에서는 백제 시대 독무덤 6기, 돌덧널무덤 3기, 돌방무덤 67기, 분구묘 2기가 확인되고, Ⅱ지역에서는 분구묘 3기, 돌덧널무덤 6기, 움무덤 1기, 돌방무덤 26기가 확인된다. Ⅲ지역에서는 초기 철기 시대 독무덤 3기, 움무덤 7기, 주구토광묘 3기, 분구묘 6기, 앞트기식 돌방무덤 5기, 횡혈식 돌방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초기 철기 시대~백제 시대 생활 유구]

Ⅰ지역은 백제 시대 주거지 9기, 통일 신라 말부터 조선 시대까지 주거지 10기,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 건물터 1기, 조선 시대 건물터 5기가 조사되었다. . Ⅱ지역은 초기 철기 시대 주거지 22기, 백제 시대 지상 건물터 1동, 주변으로 수혈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또, 조선 시대 건물터 14기가 조사되었다. 확인된 백제 시대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대체적으로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내부 시설로는 아궁이, 기둥 구멍, 벽구 시설 등이 확인되고 있다.

[초기 철기 시대 주거지]

초기 철기 시대 주거지는 모두 B지구에서 확인된다. 건물터의 규모는 가로 약 360㎝, 세로 약 850㎝로 추정된다. 건물터는 풍화암반토로 이루어진 경사면을 ‘ㄴ’자로 굴광하여 평탄 대지를 조성하였고 내부에는 다수의 주공 흔적과 부뚜막 시설이 확인되었다.

[백제 시대 건물터]

백제 시대 건물지는 D지구에서 조사되었다. 건물터의 규모는 가로 약 360㎝, 세로 약 850㎝로 추정된다. 건물터는 풍화암반토로 이루어진 경사면을 ‘ㄴ’자로 굴광하여 평탄 대지를 조성하였고 내부에는 다수의 주공 흔적과 부뚜막 시설이 확인되었다.

[조선 시대 건물터]

조선 시대 건물지는 C지구의 남사면 곡부상에 집중되어 있다. 건물터의 규모는 가로 약 360, 세로 약 850㎝로 추정된다. 건물터는 풍화암반토로 이루어진 경사면을 ‘ㄴ’자로 굴광하여 평탄 대지를 조성하였고 내부에는 다수의 주공 흔적과 부뚜막 시설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Ⅰ구역에서는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깊은바리토기[深鉢形토기], 직경호[입구가 직선인 호], 기대[器臺], 세발그릇, 금제얇은고리귀걸이, 금제 영락[瓔珞], 뚜껑접시[蓋杯], 병, 관고리, 관못 등이 출토되었다. Ⅱ구역에서는 민무늬 토기, 석촉(石鏃), 두귀 달린 항아리[兩耳附壺], 짧은목항아리[短頸壺], 직경호, 세발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Ⅲ구역에서는 유경식[有莖式] 돌칼, 짧은목항아리, 두귀 달린 항아리, 환도, 관못, 유리구슬, 마노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서천 추동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생활 유구와 분묘 유구가 모두 확인되는 유적이다. 각 시기별로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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