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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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和順 神社 毁損 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30년 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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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기/일시 | 1930년 5월 2일 - 조신환과 김상만 화순 신사 일부 웨손 |
종결 시기/일시 | 1930년 6월 10일 - 화순 신사 훼손 사건 주동자 조신환과 김상만 징역 선고 |
발생|시작 장소 | 화순 신사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
성격 |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조신환|김상만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 조신환이 김상만과 화순 신사를 훼손한 사건.
[역사적 배경]
한반도 내 신사는 1876년 개항장에 형성된 일본인 거류지에 처음 설립되었다. 일제 강점기 신사는 한반도에 사는 일본인들이 일본에서와 같은 신앙 생활을 영위하거나 제국 이념을 학습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일제의 사상을 강제 당하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많은 한국인들은 한반도 각지에 건립된 신사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경과]
조신환(曺信煥)[1909~1969]은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출신으로 1929년 6월부터 광주지방법원 화순등기소에서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조신환은 당시 일본 유학을 앞두고 형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던 김상만(金相萬)과 친하여졌다. 두 사람은 기독교도와 항일 의식이라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졌다. 두 사람이 평소 권투 연습을 하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남산공원 인근에는 화순 신사(和順 神社)가 있었다. 1930년 4월 30일 오후 8시 조신환은 개축된 화순 신사를 보고 분노하여 신사를 훼손하려 하였고 김상만도 동조하였다. 조신환과 김상만은 신전 뒤편에 있던 20척의 종수[왜 전나무]를 쓰러뜨렸다. 이후 5월 2일 저녁 8시 남산공원에 올라 화순 신사 파괴를 결의하였다. 조신환과 김상만은 화순 신사 정면에 있는 문짝 4개를 뜯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결과]
조신환과 김상만은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화순 신사 수목 훼손을 다룬 첫 번째 재판에서는 훈방 조치되었다. 그러나 1930년 6월 10일 두 번째 재판에서 조신환과 김상만은 각각 징역 1년 6월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조신환의 공적을 인정하여 2021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의의와 평가]
화순 신사 훼손 사건 은 천황제 및 일제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신사를 공격함으로써 민중의 항일 의식을 보여 준 사건으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