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21
한자 群山公立普通學校 放火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19년 3월 5일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지역 3·1운동 전개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3월 23일연표보기 -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19년 9월 27일 -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 주도자 상고심 기각
발생|시작 장소 군산공립보통학교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중앙로 91[중앙로2가 145]
성격 방화 사건
관련 인물/단체 이남률|김종련

[정의]

1919년 3월 23일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이남률 등이 주도하여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방화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지역에서는 군산영명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여 3월 5일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후 만세 운동은 군산 각지로 확대되었고 군산공립보통학교, 군산영명학교, 군산농학교 내에서 학생들도 독립 만세 운동을 모의하였다.

[경과]

3·1운동 이후 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지역에서는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군산공립보통학교에서 만세 운동을 제지하자 1919년 3월 14일 김학술, 라명조, 신형식 등 70여 명의 학생들이 연서하여 자퇴를 결의하였다. 학교 측의 압박과 회유가 계속되자 이남률, 김종련, 김수남, 신형식, 김학술, 권재길, 나명조 등은 학교에 방화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군산에 거주하였지만 본적이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가공리였던 이남률서천군 화양면 망월리 출신인 김종련이 방화 모의에 참여하였다. 이남률은 군산부 전주통에 있는 신림약국에서 알코올 1파운드[0.45㎏]를 구입하였고, 김수남은 다른 상점에서 솜 1매를 샀다. 주도자들은 1919년 3월 23일 밤 10시 학교 본 교사 동쪽 계단 출입구에 불을 질렀다.

[결과]

군산공립보통학교가 소실된 이후 주도자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은 이남률김종련에게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김수남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권재길·문종묵·김학술·라명조·신형식은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남률과 김수남은 상고하였으나 7월 12일 대구복심법원, 9월 27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주장이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3·1운동 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이남률 등 서천 지역에서 신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군산 지역뿐 아니라 서천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 항일 의식이 만연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정부는 사건을 주도한 이남률에게 1993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김수남과 신형식에게 1990년 애국장, 김학술에게 2009년 애족장, 김종련에게 2019년 대통령 표창, 권재길에게 2020년 애족장, 나명조에게 2021년 대통령 표창, 문종묵에게 2021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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