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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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烽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범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의 조선 시대 군사 통신 시설.
[개설]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신호 전달을 함으로써 해안 지역이나 변경 지역에 출몰한 외적의 군사 정보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군사 통신 수단이다. 봉수는 우역(郵驛) 및 파발과 더불어 전근대 사회에서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봉수는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되어 조선 시대 내내 유지된 중요 시설이었다. 봉수는 위치에 따라서 기능과 역할이 달랐고, 구조와 형태도 조금씩 달랐다. 즉, 중앙에 위치한 경봉수, 바닷가에 위치한 연변 봉수, 육지에 위치한 내지 봉수, 임시로 설치된 권설 봉수가 있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 봉수 제도는 고려 시대의 봉수제를 이어받았다. 이윽고 세종 대 5거제가 확정되었는데 아무 일도 없으면 1거(擧),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2거, 경계에 이르면 3거, 접전을 벌이면 4거, 육지에 상륙하면 5거였다.
[조선 시대 서천 지역의 봉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서천 지역의 봉수 제도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한산군에는 도리산 봉수와 남산 봉수가 있었다. 도리산 봉수는 군 남쪽 화양면 옥포리 원산에 있었고, 서쪽으로 서천 장암 봉수와 북쪽으로 서천군 남산 봉수와 연결되었다. 남산 봉수는 서천군 남쪽 화양면 활동리 어성산에 있었고, 동쪽으로 임천의 개암 봉수에 연결되었다.
서천군에는 장암 봉수와 다사산 봉수가 있었다. 장암 봉수는 장항읍 장암리 후망산에 있었고 남쪽으로 전라도 옥구현 점방 봉수와 북쪽으로 다사산 봉수에 연결되었다. 다사산 봉수는 다사산에 있었고 서쪽으로 비인현 칠지산 봉수에 연결되었다. 비인현에는 칠지산 봉수가 있었다. 현 서쪽 칠지리에 있었고 남쪽으로 서천의 다사산 봉수와 북쪽으로 남포의 덕산 봉수에 연결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서천 지역 봉수 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한산군에 있던 도리산 봉수와 남산 봉수는 모두 폐지되었다. 서천군 봉수는 운은산 봉수로 단일화되었다. 운은산 봉수는 남쪽으로 전라도 옥구현 점방산 봉수와 북쪽으로 비인현 칠지산 봉수와 연결되었다. 비인현 봉수는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칠지산 봉수가 있었다. 남쪽으로 서천군 운은산 봉수와 북쪽으로 남포현 통달산 봉수와 각각 연결되었다. 이처럼 조선 전기 서천 지역의 봉수는 연변 봉수로 남쪽으로 전라도 옥구의 화산 봉수에서 시작하여 서천의 운은산-비인 칠지산-남포 옥미산-보령 조침산-홍주 흥양산-결성 고산-홍주 고구를 거쳐 서산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