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07
한자 新谷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華山里)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신곡역 폐지
관할 지역 신곡역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신곡역(新谷驛)은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華山里)에 있었던 역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의 이인역을 중심으로 편성한 역도인 이인도(利仁道)에 속한 9개 역 중 하나였으며, 충청남도 서천군을 지나는 도로에 있었다. 이인도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자리한 이인역을 중심으로 설치되었으며, 공주시를 중심으로 충청남도 남부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였다. 소속 역은 주로 좁은 길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도로의 거점마다 공문서의 전달, 관리의 왕래와 숙박, 공물의 진상을 수송하기 위하여 역이 만들어졌다. 역제(驛制)의 기반은 고려 시대에서 계승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역로망을 두고 더욱 발전하였다. 조선 시대 태조는 역제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하였으며, 세종 연간에는 전국적인 역로망을 새로 조직하였다. 역제는 역도(驛道)와 속역(屬驛) 체제로 관리되었다. 역도는 여러 개의 역을 묶어 관리하기 위하여 역승(驛丞) 혹은 찰방(察訪)을 파견하였으며, 역승과 찰방의 지휘 아래 소속 역을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편찬을 완료한 1454년(단종 2)에 이르러서는 전국 538개의 역을 44개의 역도가 관리하는 체계를 확립하였다. 충청도는 충청좌도의 연원도, 율봉도, 성환도가 있었고, 충청우도의 금정도, 시흥도, 이인도가 있었다. 신곡역은 이 중에서 이인도에 속하였다.

[관련 기록]

신곡역은 조선 시대 한산군의 읍지와 지리지 역원조에 자세하게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신곡역한산군의 유일한 역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신곡역한산군의 서쪽 11리[약 4.4㎞]에 있다고 기록하였다.

[내용]

『호서읍지(湖西邑誌)』에 따르면, 신곡역에 소속된 말은 대마(大馬) 2필, 기마(騎馬) 3필, 복마(卜馬) 5필이었다. 『일성록(日省錄)』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정조, 순조, 고종 연간에 신곡역은 죄인들의 유배지가 되기도 하였다.

[변천]

조선 시대의 역은 보완을 거치면서 파발제, 봉수제와 더불어 군사 통신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고종 32) 근대적인 통신 제도가 등장하면서 우체사의 설치와 함께 폐지되었다. 신곡역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기능을 상실하고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신곡역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의 유일한 역이자 한산군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통신 기관으로서 조선 시대 내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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