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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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豆谷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옥북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범 |
시행 시기/일시 | 14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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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95년![]() |
관할 지역 | 두곡역 -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옥북리![]()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옥북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교통 통신 기관.
[개설]
두곡역(豆谷驛)은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옥북리에 있었던 역이다. 충청남도 공주시의 이인역을 중심으로 편성한 역도인 이인도(利仁道)에 속한 9개 역 중 하나이며, 충청남도 서천군을 지나는 도로에 있었다. 이인도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이인역을 중심으로 설치되었으며, 공주시를 중심으로 충청남도 남부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였다. 소속 역은 주로 좁은 길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도로의 거점마다 공문서의 전달, 관리의 왕래와 숙박, 공물의 진상을 수송하기 위하여 역이 만들어졌다. 역제(驛制)의 기반은 고려 시대에서 계승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역로망을 두고 더욱 발전하였다. 조선 시대 태조는 역제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하였으며, 세종 연간에는 전국적인 역로망을 새로 조직하였다. 역제는 역도(驛道)와 속역(屬驛) 체제로 관리되었다. 역도는 여러 개의 역을 묶어 관리하기 위하여 역승(驛丞) 혹은 찰방(察訪)을 파견하였으며, 역승과 찰방의 지휘 아래 소속 역을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편찬을 완료한 1454년(단종 2)에 이르러서는 전국 538개의 역을 44개의 역도가 관리하는 체계를 확립하였다. 충청도는 충청좌도의 연원도, 율봉도, 성환도가 있었고, 충청우도의 금정도, 시흥도, 이인도가 있었다. 두곡역은 이 중에서 이인도에 속하였다.
[관련 기록]
두곡역은 조선 시대 서천군의 읍지와 지리지 역원조에 자세하게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두곡역은 서천군의 유일한 역으로 1408년(태종 8) 처음 설치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두곡역이 서천군 남쪽 11리[약 4.4㎞]에 있다고 기록하였다.
[내용]
『호서읍지(湖西邑誌)』에 따르면, 두곡역에 소속된 말은 대마(大馬) 2필, 기마(騎馬) 3필, 복마(卜馬) 5필이었으며, 두곡역 소속의 역리(驛吏)는 5명, 역노(驛奴)는 33명, 역비(驛婢)는 1명이 있었다.
[변천]
조선 시대의 역은 보완을 거치면서 파발제, 봉수제와 더불어 군사 통신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고종 32) 근대적인 통신 제도가 등장하면서 우체사의 설치와 함께 폐지되었다. 두곡역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기능을 상실하고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두곡역은 충청남도 서천군의 유일한 역이자 서천군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통신 기관으로서 조선 시대 내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