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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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범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개설]
역원 은 도로의 거점마다 자리하고 있다. 조선 시대 역원제는 고려 시대의 역원제를 계승하여 새로운 역로망을 두고 발전하였다. 조선의 태조는 역제 운영의 문란함을 지적하였고, 세종은 이를 새로 재편하였다.
역로는 역도-속역 체제로 되어 있다. 역도에는 여러 개의 역을 묶어 담당하는 역승 혹은 찰방을 파견하여 관리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충청도의 역도가 9개로, 『경국대전』에는 충청도의 역도가 6개로 기록되어 있다. 충청도 서천 지역에는 3곳의 역이 존재하였는데, 모두 충청도 공주에 있는 이인도에 속하였다. 이인도는 용전역-은산역-유양역-숙흥역-남전역-청화역-두곡역-신곡역-영유역 등 9개의 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충청도 서천 지역에 존재한 역은 청화역, 두곡역, 신곡역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내용이 거의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다. 청화역은 비인현 남쪽 2리[0.79㎞]에 있었는데,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 비인향교 옆으로 추정된다. 1414년(태종 14)에 처음 설치되었다. 두곡역은 서천군 남쪽 11리[4.32㎞]에 있었는데,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옥북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1408년(태종 8)에 처음 설치되었다. 신곡역은 한산군 서쪽 11리에 있었는데,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 일대로 추정된다. 두곡역과 마찬가지로 1408년에 처음 설치되었다.
역 이외에 공용 여행자의 숙박을 위하여 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원은 객사 이외에 각 중요 도로에 설치된 일종의 여관이었다. 국가는 원을 유지하기 위하여 토지를 지급하였고, 세종 연간에는 부근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관리하도록 하였다. 충청도 서천 지역에 설치된 원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한산군에 설치된 원을 보면 동쪽 14리[5.50㎞]에 있던 간법암원, 서쪽 7리[2.75㎞]에 있던 숭정원, 북쪽 25리[9.82㎞]에 있던 곡화원, 서쪽 13리[5.11㎞]에 있던 길산원이 있었다. 서천군에 설치된 원은 두 곳으로 서쪽 8리[3.14㎞]에 있던 객망원과 동쪽 9리[3.53㎞]에 있던 길산원이 있다. 한산군과 서천군에 각각 존재한 길산원은 사실상 같은 원을 말한다. 길산이 두 행정 구역의 경계에 있었다. 그러므로 한산군에 속한 길산원과 서천군에 속한 길산원이 별도로 기재된 것으로 생각된다. 비인현에는 세 곳의 원이 있었다. 남쪽 13리에는 종천원, 동쪽 30리[11.78㎞]에는 독두등원, 북쪽 2리에는 탑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