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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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助音居西 |
이칭/별칭 | 웅진명소(熊津溟所),용당진사(龍堂津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박범 |
[정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사당.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국가의 제사를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나누었다. 중사는 오악(五岳). 사진(四鎭), 사해(四海), 사독(四瀆)로 나누어 산, 바다, 강 등에 국가 제사를 실시하게 하였다. 그중에서 4독에 해당하는 제사 공간으로서 동쪽에는 토지하(吐只河), 남쪽에는 황산하(黃山河), 서쪽에는 웅천하(熊川河), 북쪽에는 한산하(漢山河)를 두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여러 지역에 중사의 기도처로서 보은의 속리악, 고령의 추심, 결성의 오서악, 대성군의 북형산, 완도의 청해진이 있었고, 서천 지역에 상조음거서(上助音居西)가 있었다.
[관련 기록]
상조음거서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 제1에 기록되어 있으며, 4독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
상조음거서는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창선2리의 도선장(渡船場) 일대로 추정된다. 서해와 금강을 오가는 선박들의 안녕과 안전한 항해를 기도하는 기도처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상조음거서가 있던 곳에 고려 시대에는 웅진명소(熊津溟所)가 자리하였다. 웅진명소는 서천읍치에서 군 남쪽 24리[약 9.5㎞] 지점에 있었다. 고려 시대 웅진명소는 다시 조선 시대 용당진사(龍堂津祠)로 전통을 이어 갔다. 용당진사는 금강을 드나드는 조운선과 상선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던 곳이며, 상조음거서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상조음거서는 고려 시대 웅진명소와 조선 시대 용당진사의 기초로서 통일 신라 시대 이래 조선 시대까지 금강을 드나드는 선박의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역사적 기원을 간직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