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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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村江 |
이칭/별칭 | 백강(白江),백촌(白村),백사(白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기섭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금강 하구 유역 일대인 백강을 『일본서기』에서 이르던 명칭.
[개설]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간 왜국(倭國)의 전투선 1,000척과 1만 명이 663년 8월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백촌강(白村江)에 진을 친 당나라 전선 170척과 7,000명을 공격하여 4차례 전투를 벌였다가 대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 백촌강전투라고 부르는 전투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같은 사건을 전하면서, “왜의 배 1,000척은 백사(白沙)[백강]에 정박하여 있고 백제의 정예 기병이 언덕 위에서 배를 지키고 있었다.”라고 표현하여, 백촌강과 백강이 같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명칭 유래]
『일본서기』에는 663년 8월 13일 백제 부흥군의 왕 풍장(豊璋)이 “나는 백촌[하쿠스키]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왜국 군사를] 접대하겠다.”라고 말하였다는 기록과, “대당(大唐)의 장군이 전선 170척을 이끌고 백촌강에 진을 쳤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백촌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백촌마을 이름을 따라 강 이름이 생겼다는 견해도 있다. 같은 사건이 『삼국사기』에는 “왜의 배 1,000척은 백사에 정박하여 있고”라고 하여 ‘백사’로 적혀 있는데, ‘백사’는 ‘백강’을 잘못 쓴 것이거나 다른 표현이라고 하여 백촌(白村)을 백사(白沙)·백강(白江)으로 보기도 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백촌강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이름이고, 『삼국사기』에는 백강 또는 백사로 적혀 있으므로, 백촌과 백사를 같은 곳으로 보아 지금의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의 ‘백사리’ 또는 ‘백사장’에 비정하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천군 누정(樓亭)조에 “백사정(白沙亭)은 군의 서남쪽 13리[약 5.2㎞]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서천 산천(山川)조에 “백사정은 서남쪽 13리 해변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백사정은 금강 하구의 장항에서 북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이다.
[관련 기록]
『일본서기』 권27 천지기(天智紀) 2년(663) 가을 8월조에 풍장이 “지금 들으니 대일본국[야마토노쿠니]의 구원군 장수 노원군신(盧原君臣)이 1만여 명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오고 있다. 장군들은 미리 준비하도록 하라. 나는 백촌에 가서 기다리겠다.”라고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어서 “17일에 적장이 주유(州柔)에 이르러 그 왕성을 에워쌌다. 대당의 장군이 전선 170척을 이끌고 백촌강에 진을 쳤다.”라고 기록하였다.
『삼국사기』에는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문무왕이 가을 당나라 총관(摠管) 설인귀(薛仁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에 “이때 왜국의 수군이 백제를 도우러 와서 왜의 배 1,000척이 백사에 정박하여 있고 백제의 정예 기병들이 언덕 위에서 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라고 과거를 회상한 대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