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376
한자 舌利停
이칭/별칭 후리정(后利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김기섭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었던 신라 시대 지명.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따르면, 663년(신라 문무왕 3) 5월 문무왕이 김유신(金庾信) 등 장군 28명을 거느리고 당나라 군대와 합세하여 백제 부흥군이 주둔하고 있던 두릉윤성(豆陵尹城)과 주류성(周留城) 등 여러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그 뒤 겨울 10월 21일부터 백제 부흥군의 지수신(遲受信) 등이 지키는 임존성(任存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11월 4일 군사를 돌려 설리정으로 와서 싸움의 공을 따져 상을 차등 있게 주고 크게 사면하였다고 한다. 당시 문무왕의 군대가 머문 설리정은 서천 지역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 충청도 서천 연혁조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본래 백제의 설림(舌林)으로서 신라 때 설리정을 두었으며, 경덕왕 16년에 서림군(西林郡)으로 고쳐 웅주에 예속시켰다.” 그러나 자세한 근거는 알 수 없다. 『삼국사기』에는 설(舌) 자가 후(后) 자로 적힌 경우도 있어서 후리정(后利停)이라고도 한다.

[내용]

설리정을 지금의 서천읍 남산리 남산 정상부에 있던 남산성(南山城)에 비정하기도 하는데, 남산성은 높이 146m의 남산 정상부를 감싼 둘레 660m의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영취산성(靈鷲山城)이라고도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읍성(古邑城)으로 소개되어 있다. 둘레 515m[1,545척]이고 내부에 우물이 1개 있으며, 세종 때 땅이 외지고 험하다고 하여 지금의 읍치[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로 옮겼는데, 산성 아래에 옛 읍터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남산성은 평면 형태가 긴 타원형이며, 성벽은 산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을 편축식과 협축식으로 쌓았다. 성안에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탄지가 곳곳에 있으며, 북쪽 골짜기에 집수지가 있다. 치(雉) 2개소와 출입 시설 2개소가 확인되었는데, 서문지를 2회에 걸쳐 발굴 조사한 결과 최소 세 차례 이상 개축한 흔적을 확인하였다. 서문지와 성안 건물지에서는 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설림(舌林)’과 ‘서림군(西林郡)’이라고 적힌 명문 기와가 많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