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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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산놀이,남산가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의례 장소 | 남산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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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세시풍속|민속놀이|여성 집단 놀이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8월 17일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에서 해마다 음력 8월 17일에 여성들이 행하는 집단 놀이.
[개설]
서천 남산놀이 는 추석을 쇠고 난 음력 8월 17일에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의 남산에서 여성들만 참여하여 행하는 집단 놀이이다. 일명 ‘산놀이’, ‘남산가기’라고도 한다. 서천 남산놀이는 ‘반보기’의 전통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반보기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한동안 나지 못한 부녀자들이 두 집 사이의 중간쯤 되는 장소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풍속을 말한다. 서천 남산놀이는 주로 시집간 부녀자들이 추석 이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평소 만나지 못한 친정 식구와 친지들을 만나 회포를 풀며 집단적으로 춤과 노래로 즐기는 놀이이다.
[연원 및 변천]
언제부터 서천 남산놀이가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제 강점기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조사한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관련 설화가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가 패망하고 나서 백제 여인들이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갈 때, 백제 백성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눈물의 작별을 하였다. 남은 가족들이 서해로 떠나가는 배를 보려고 남산에 올라 슬퍼하였다. 이후 해마다 음력 8월 17일이 되면 아낙네들이 남산에 모여 서쪽을 바라보며 당나라로 끌려간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이러한 풍속에서 서천 남산놀이가 유래하였다고 한다.
서천 남산놀이 는 남산을 둘러싸고 있는 남산리와 이웃한 마서면 봉남리를 주축으로 전승되었다. 인근의 여러 마을과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도 많은 부녀자가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으나, 1970년대 이후 산업화·도시화가 급격히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중단되었다.
[절차]
음력 8월 17일이 되면 서천 일대의 부녀자와 처녀들은 남산에 올라 서천 남산놀이로 하루를 즐긴다. 이날은 사방 100리의 여성들이 다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한껏 흥이 오르면 강강술래처럼 손을 잡고 원형으로 선을 긋고 허리를 구부리며 춤을 추었다. 또 기와밟기[놋다리놀이]처럼 신발을 양손에 들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다니며 노래를 하고, 이어 허리를 구부린 부녀자들이 후렴을 하며 즐겼다. 그러다가 사람 위에서 떨어진 사람끼리 또 원형으로 안팎에 선을 그은 후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허리 위로 건너뛰었으며, 그 사람 옆을 따라다니며 떨어지기를 기원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앞소리를 하는 선창자가 있어 소리를 메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후렴을 따라 부르는 집단 놀이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서천 남산놀이 는 일종의 집단적 반보기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반보기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혼인한 딸과 친정어머니, 일가친척이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당일치기로 만나 회포를 푸는 풍속이다. 만남의 장소는 주로 산이나 물이 좋은 시냇가였고 서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루를 즐겼다. 양가의 관계가 돈독한 집안에서는 사돈지간이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동년배들이 참석하여 단체로 유희를 즐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