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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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泰錫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경희 |
출생 시기/일시 | 1940년 10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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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64년 - 오태석 배재고등학교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64년 - 오태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67년 - 오태석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웨딩드레스」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67년 - 오태석 서울 연극제 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68년 - 오태석 국립극장과 『경향신문』 공동 공모 장막극에 「환절기」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68년 - 오태석 실험극단에서 「환절기」,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교행」 등 공연 |
활동 시기/일시 | 1969년 - 오태석 동랑레퍼토리극단에서 「루브」 연출 |
활동 시기/일시 | 1972년 - 오태석 「쇠뚝이 놀이」 발표 |
활동 시기/일시 | 1986년 - 오태석 극단목화 창단 |
활동 시기/일시 | 1987년 - 오태석 서울 연극제 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2년 - 오태석 제28회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3년 - 오태석 제1회 대산문학상[희곡 부문]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4년 - 오태석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8년 - 오태석 성좌극장 대표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2004년 - 오태석 제3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05년 - 오태석 제15회 호암상 예술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06년 - 오태석 국립극장 예술감독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2012년 - 오태석 제48회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12년 - 오태석 제48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2018년 - 오태석 극단목화 레퍼토리컴퍼니 대표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2018년 - 오태석 소극장 아룽구지 대표 취임 |
몰년 시기/일시 | 2022년 11월 28일![]() |
출생지 | 오태석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선암리![]() |
학교|수학지 | 배재고등학교 -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11길 19[정동 34-5] |
학교|수학지 | 연세대학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
묘소 | 대성사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산140-1 |
성격 | 극작가|연출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교수|극단 목화 레파토리컴퍼니 대표|소극장 아룽구지 대표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선암리 출신의 극작가이자 연출가.
[가계]
오태석(吳泰錫)[1940~2022]은 1940년 10월 11일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선암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오태석은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법관으로 근무하였던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끌려가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자 고향인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아룽구지로 할머니를 따라와,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지냈다. 1964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생활 방편으로 『연세춘추』에 소설을 연재하고 희곡 원고를 투고하는 한편, 학교 노랫말에 응모하는 등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1967년 희곡 「웨딩드레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듬해 1968년 국립극장과 『경향신문』이 공동으로 공모한 장막극에 「환절기」가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정식 데뷔하였다. 이후 실험적이고 전통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논란과 뜨거운 호응을 동시에 얻는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자리 잡았다.
오태석은 1968년부터 실험극단에서 「환절기」,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교행」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969년 동랑레퍼토리극단으로 옮겨 「루브」를 연출하고, 1972년에는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작품 「스카핑의 간계」를 우리 식으로 만든 「쇠뚝이 놀이」를 발표하였다. 이어 「초분」, 「태」 등을 무대에 올리며 잃어버린 전통을 공연 무대를 통하여 되살리는 일에 매진하였다. 1986년 극단목화를 창단하고, 1998년 성좌극장 대표, 2006~2010년 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하였으며,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18년부터 극단목화 레퍼토리컴퍼니와 고향 마을 이름을 딴 소극장 아룽구지 대표이자 서울예술대학 극작과 석좌교수로 활동하였다.
오태석은 극단목화를 이끌며 실험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연극을 선보였다. 시골 생활 경험이 오태석의 연극 생활에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오태석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굿, 산대놀이, 판소리, 무가, 설화 등 세시 풍속을 체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오태석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 김병옥, 유해진, 박희순, 장영남 등을 키워 냈으며,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극으로 오태석표 연극 세계를 구축하였다.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적 수용을 통하여 한국적 연극을 창조하였으며, 사라져 가는 우리말을 되살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22년 11월 28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오태석의 작품으로는 「춘풍의 처」, 「자전거」,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백마강 달밤에」, 「여우와 사랑을」, 「천년의 수인」, 「코소보 그리고 유랑」, 「잃어버린 강」, 「지네와 지렁이」, 「내 사랑 DMZ」,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만파식적」, 「초분」, 「태」, 「자전거」 등 다수가 있다. 작품집으로 『오태석 공연 대본 전집』이 있다.
[묘소]
오태석의 묘지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산140-1 대성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오태석은 1987년 서울 연극제 대상, 1992년 제28회 동아연극상 대상, 1993년 제1회 대산문학상[희곡 부문], 1994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가상, 2004년 제3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2005년 제15회 호암상 예술상, 2012년 제48회 동아연극상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