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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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경희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 「여립 조씨 묘지」 강세환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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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23년 5월 31일 - 「여립 조씨 묘지」 『2023 서천군지』 6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한산면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
채록지 | 마양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마양리![]() |
성격 | 설화|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며느리|시아버지 |
모티프 유형 | 베틀형 명당과 발복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서 여립 조씨 명당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여립 조씨 묘지」는 여립 조씨(趙氏)가 명문 가문이 된 이유를 명당과 관련을 지어 밝히고 있는 풍수 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여립 조씨 묘지」는 1990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마양리 주민 강세환에게 채록하였다. 2023년 5월 31일 서천군에서 발행한 『2023 서천군지』 6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여립 조씨의 선조는 원래 산 밑에서 베를 짜며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며느리가 모시를 짜던 중 북물[모시 꾸리 담그는 물]이 말라서 시아버지에게 물을 좀 떠 달라고 부탁하였다. 시아버지는 물을 뜨러 나루터로 내려가던 중 우연히 베틀 형국이 보이는 곳을 발견하였다. 시아버지는 베틀 형국의 나루터가 매우 좋은 터라고 며느리에게 일러 두었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단순한 나루터였지만 시아버지는 명당자리를 알아본 것이었다. 나중에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말한 나루터 자리에 묘를 썼다. 그 후 집안 대대로 융성하여 정승과 판서를 세 명씩이나 낸 명문 가문이 되었다. 여립 조씨의 묏자리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의 동산리와 지현리 사이 야산에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여립 조씨 묘지」의 모티프는 ‘베틀형 명당과 발복’이다. 조씨가 베틀형 명당에 묘를 써서 발복하였다는 것은 한산면이 모시 생산지이기 때문에 베틀 형국의 땅을 명당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여립 조씨 묘지」는 한산 지역의 특성이 잘 반영된 설화이자, 며느리가 베를 짜며 성실하게 살아서 집안이 발복하였다는 유교 전통문화가 반영된 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