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1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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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호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월 21일 - 「숙종과의 만남을 예견한 갈처사」 정의선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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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5년 12월 8일 - 「숙종과의 만남을 예견한 갈처사」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
관련 지명 | 원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 |
채록지 | 원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 |
성격 | 설화|풍수담 |
주요 등장 인물 | 숙종|갈처사 |
모티프 유형 | 풍수와 정의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에 예언 능력이 뛰어난 지관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숙종과의 만남을 예견한 갈처사」는 풍수에 능한 갈처사라는 지관이 예언 능력까지 뛰어나서 한 총각을 잘살게 하여 주었을 뿐 아니라, 숙종(肅宗)[1661~1720]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날짜도 정확하게 맞추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숙종과의 만남을 예견한 갈처사」는 2010년 1월 21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원산리 주민 정의선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숙종이 밤에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전국을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두하천 냇물 백사장 위에 염한 송장을 놓고 대성통곡하면서 모래밭을 파고 있는 총각을 보았다. 숙종이 총각에게 사연을 물으니 갈처사라는 지관이 잡아 준 어머니의 묏자리 때문이라고 하였다. 자식으로서 차마 어머니를 물속에 묻을 수는 없어서 울고 있다고 하였다. 효성에 감동한 숙종은 길게 쓴 편지에 옥새를 찍어 청년에게 들려 준 다음 수원부사를 찾아가라고 보냈다. 그런 뒤 호위병에게는 송장을 지키라고 하고 갈처사가 살고 있다는 오두막집을 찾아갔다.
임금이 찾아와도 누구인지 전혀 몰랐던 갈처사는 퉁명스럽게 대하였다. 숙종이 “그래 지관이라고 하는 자가 저 백사장 모래밭탱이 물구뎅이에다가 묏자리를 잡아 주었는가? 자네가 지관이여?” 하니, “모르먼 아무 말도 말어. 오늘 발복에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여. 조선에 그런 영화지지가 어디 있겄어?” 하는 것이었다. 숙종이 생각하여 보니, 수원부사에게 쌀 300석을 청년에게 당장 주고 어머니 장례도 잘 지내 주라는 특명의 편지를 보냈으니 지관의 말이 영락없이 딱 맞아떨어졌다.
숙종은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풍수를 잘 아는 사람이 왜 이런 데서 살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갈처사는 “저기 시커먼 기와집들 다 도둑놈들만 사는 집이유. 아, 여기는 말이여, 상감마마가 오는 장소요. 이런 명당이 어디 있어유?” 하였다. 가만히 들어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임금이 오는 날짜가 언제인지 물어보니, “글쎄유. 내가 택일을 헐 때 시를 적어 놨는디, 방에 들어가 봐야 알겄습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자마자 엎어져서 기다시피 하면서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상감마마 오시는 시간이었네유.” 하는 것이었다.
숙종은 갈처사의 능력이 대단함을 알고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생전에 미리 잡아 두는 묏자리]를 부탁하였다. 어머니를 여읜 총각은 벼락부자가 되었고, 갈처사는 약속한 날에 대궐에 찾아가서 숙종의 묘를 잡아 주었다. 장희빈(張禧嬪)[?~1701]도 갈처사를 불러 자신의 신후지지를 부탁하였으나 갈처사는 급한 일이 있어 나중에 오겠다고 말하고는 오두막집을 떠난 후 사라져 버렸다.
[모티프 분석]
「숙종과의 만남을 예견한 갈처사」의 모티프는 ‘풍수와 정의’이다. 서민들이 기대하는 훌륭한 풍수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 민담이다. 풍수가는 풍수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인품도 뛰어난 사람이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