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를 세워 놓아 터를 메운 토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186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0년 2월 11일 - 「허수아비를 세워 놓아 터를 메운 토정」 박현구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5년 12월 8일 - 「허수아비를 세워 놓아 터를 메운 토정」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관련 지명 한산면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지도보기
채록지 송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지도보기
성격 설화|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이지함
모티프 유형 이지함과 묏자리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토정 이지함과 명당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허수아비를 세워 놓아 터를 메운 토정」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이 자신이 잡은 묏자리 앞의 빈터를 메우기 위하여 허수아비를 세운 이야기이다. 돌을 맞으면 뺑긋 웃고 쏙 들어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허수아비를 보려고 사람들이 일부러 돌을 갖고 다니면서 던지다 보니 빈터의 땅이 조금씩 돋우어졌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허수아비를 세워 놓아 터를 메운 토정」은 2010년 2월 11일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송산리 주민 박현구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토정 이지함이 자신의 묏자리를 잡았을 때의 일이다. 토정이 잡은 묏자리 앞은 풍수지리적으로 바다가 끊긴 자리여서 땅이 꺼진 것이 흠이었다. 물은 이쪽으로든 저쪽으로든 안고 돌아 나가야 하는데, 물이 바로 쑥 빠져 버리는 당문파(堂門破) 형세는 돈이 붙지 않는다. 묘를 쓰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자리라서 이지함은 묏자리 앞의 끊어지고 꺼진 자리를 돋우어 올리기 위하여 허수아비를 세웠다. 이지함이 세워 놓은 허수아비는 사람들이 돌을 던지면 뺑긋 웃고 쏙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 올랐다. 사람들은 일부러 돌을 가지고 다니다가 희한한 허수아비를 보려고 앞을 지나갈 때마다 돌을 던졌다. 이지함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던진 돌이 쌓이면서 땅이 조금 메워졌다. 이지함은 묏자리를 잡아 두고 “내 자손이 1,000명은 될 텐데, 소금장사, 나무장사를 하고 살아도 1,000명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아마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을 예측한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지함이 잡아 둔 묫자리에 화력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도로를 확실히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지함의 후손들은 복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고들 한다. 실제로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셋째 아들의 후손들을 보면 지금 다들 잘살고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허수아비를 세워 놓아 터를 메운 토정」의 주요 모티프는 ‘이지함과 묏자리’이다. 이지함의 묏자리는 부모의 묘 옆에 있다. 풍수에 능하였던 이지함이 흠을 지고서라도 부모의 묘 옆에 묏자리를 쓴 것과 흠에 대한 보완책은 이지함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지함은 생전에 “형님들을 먼저 좋은 위치에 모시고 나는 정혈처(定穴處)를 벗어나도 그 흉함을 감수할 테니 걱정 마라.”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야기와 더불어 이지함의 이러한 행적을 통하여 효심과 우애를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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