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산의 맥을 끊은 이여송」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161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중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7년 - 「월명산의 맥을 끊은 이여송」 명제현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5년 12월 8일 - 「월명산의 맥을 끊은 이여송」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
관련 지명 월명산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지도보기
채록지 수성리 -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수성리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이여송
모티프 유형 진산에 대한 애정과 외침의 상처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에서 월명산이여송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월명산의 맥을 끊은 이여송」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조선에 온 명나라의 장군 이여송(李如松)[1549~1598]이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에 있는 월명산(月明山)을 보고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 산 곳곳을 훼손하여 정기를 끊어 놓았다는 설화이다. 월명산에 대한 지역민의 애정과 외침의 상처가 담긴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월명산의 맥을 끊은 이여송」은 1997년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수성리 주민 명제현에게 채록하였다. 2015년 12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간행한 『증편 한국구비문학대계』4-8-충청남도 서천군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에 있는 월명산은 서천군의 명산으로 불리며 비인면의 진산(鎭山)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장군 이여송이 왜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조선으로 왔다. 이여송은 주위 무장들의 도움을 받아 왜군을 몰아냈다. 이여송이 왜군을 몰아내고 나서 월명산을 보았는데, 산세가 범상하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가는 명나라까지도 위험하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월명산의 정기와 맥을 끊어서 명나라에 화근이 생기지 않도록 훼손하였다. 이여송은 산의 이곳저곳을 파고, 구더기를 넣기도 하고, 깊은 구덩이를 파서 쇳물을 붓기도 하였다. 사람이나 짐승으로 말하자면 목을 찔러서 죽이듯이 산의 중요한 곳을 파고 훼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여송이 파고 훼손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월명산의 맥을 끊은 이여송」의 주요 모티프는 ‘진산에 대한 애정과 외침의 상처’이다. 이야기에는 비인면의 진산인 월명산과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등장한다. 이여송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온 명나라 장군이었다. 평양성(平壤城) 전투에서 승리하여 왜군을 몰아내고 평양성을 되찾게 하였지만, 그 뒤 왜군의 반격을 받고 나서는 공세를 거두고 소극적인 태세로 일관하였다. 이여송의 군대가 왜군을 조선에서 몰아내 주기를 바랐던 조선 사람들에게 이여송의 태도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일으켰을 것이다. 이여송월명산의 정기를 끊어 놓기 위하여 산을 파헤치고 훼손하였다는 이야기에는 조선 사람들이 이여송에게 느낀 적개심이 반영되어 있다. 비인면의 진산인 월명산은 고을을 지켜 주고 나쁜 기운이 고을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따라서 비인면 사람들은 월명산을 소중히 여겼고, 월명산의 정기가 고을을 평화롭게 지켜 주고 대대로 번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 사람들의 기대가 늘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진산에 대한 기대가 채워지지 못하였을 때 지역 사람들은 역사 속에 있었던 외침의 상처와 그 유산을 떠올렸을 것이다. 「월명산의 맥을 끊은 이여송」에는 지역을 지켜 주는 산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무한한 사랑과 국토를 유린하던 외세에 대한 분노가 함께 스며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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