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풀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1006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풍속|주술 의례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정월대보름|입춘

[정의]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 그해에 삼재가 든 사람의 액운을 퇴치하고자 정초에 행하는 주술적 의례.

[개설]

삼재(三災)는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사람에게 닥치는 세 가지 재해를 말한다. 삼재는 9년마다 찾아오는데 한번 들어오면 3년에 걸쳐 지속된다고 보며, 보통 삼재가 들어오는 첫해의 삼재를 들삼재, 2년 차는 눌삼재, 3년 차는 날삼재라고 부른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삼재가 당사자에게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액운을 가져다주게 되므로, 삼재를 잘 풀어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삼재의 액운을 막고 한 해의 복을 빌고자 행하는 주술적인 의례가 삼재풀이이다.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서는 삼재가 들면 그해 정월 초에서 정월대보름 사이에 길일(吉日)을 택하여 삼재풀이를 행하였는데, 주로 승려나 무당을 통하여 삼재를 풀어내려 하였다.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주부가 중심이 되어 삼재풀이를 시행하기도 하는데, 주부가 가족의 건강, 특히 자녀의 건강을 위하여 정초에 운수를 보고 삼재풀이를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삼재는 고대 중국의 역법(曆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기록을 보면, 삼재를 퇴치하고자 머리가 세 개 달린 매[삼두응(三頭鷹)] 부적을 사용하는 풍속이 고려 시대에 있었다고 하니, 삼재풀이가 이미 고려 시대에도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의 서천 지역에서도 삼재가 든 자녀가 있을 경우 삼두매라 하여 비슷한 부적을 구매하여 지니고 다니게 한다.

[절차]

서천 지역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삼재풀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서면 마량리에 있는 관적사(冠寂寺)에서는 삼재풀이를 입춘에 한다. 이때, 삼재가 든 사람의 속옷을 가져가서 옷에 삼재가 든 당사자의 이름을 쓴다. 삼재 든 사람의 나이 수대로 고추를 옷으로 싸 간다. 불당에 가져간 옷과 백미 3~5되[약 5.4~9ℓ], 부적을 놓고 불공을 드린다. 그러고 나서 옷을 불에 태운다. 부적에는 삼두매가 그려져 있다. 만약 입춘에 하지 못하면 대보름날 쥐불을 놓을 때에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서면 신합리 선돌마을에서는 대개 정월 초승께나 삼재 든 사람의 생일에 인근의 영신(靈神)[무속인]이나 절을 찾아가서 삼재풀이를 한다. 이때에 삼재 든 사람의 속옷과 실 한 타래를 쌀, 수수, 초 등과 함께 가지고 간다. 초는 자신의 정성을 밝히는 것이므로 반드시 가지고 가며, 실은 명이 길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늘 가지고 간다. 영신이 치성을 드리고 나면, 가지고 간 옷을 부적과 함께 태운다. 수수와 쌀로는 수수경단을 만들어 주고, 부적도 별도로 한 장을 준다. 수수경단은 삼재 든 사람에게 먹이고 부적은 한 해 동안 몸에 지니게 한다. 해마다 삼재풀이를 할 때에 부적을 새로 갈아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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