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56
한자 咸壽萬
영어공식명칭 Ham Sum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함수만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0년 - 함수만 전주 신흥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월 25일 - 함수만 만세 시위 전개
몰년 시기/일시 1930년 5월 19일연표보기 - 함수만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함수만 대통령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함수만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관포리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신흥학교 -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399[중화산동1가 188]
활동지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함수만(咸壽萬)[1901~1930]은 1901년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에서 태어났다. 전주 신흥학교(新興學校)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아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1929년 11월 3일 발발한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신흥학교 학생들은 개교기념일인 12월 15일을 기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저지로 해산하였다.

함수만을 비롯한 신흥학교 학생들은 다시 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여 태극기와 결의문 등을 준비한 뒤 1930년 1월 25일 100여 명이 결집하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함수만은 24명의 동료 학생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고문의 여독이 심하여 석방되었지만 1930년 5월 19일 전주 예수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함수만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함수만의 공적을 기려 1980년 대통령표창을,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