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55
한자 崔正植
영어공식명칭 Choe Jeongsi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최정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5년 - 최정시 멕시코 이주
활동 시기/일시 1909년 5월 - 최정식 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메리다지방회 평의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09년 8월 - 최정식 메리다지방회 대의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11년 12월 - 최정식 와하케뇨 이주
활동 시기/일시 1912년 1월 - 최정식 대한인국민회 와하케뇨지방회를 설립하고 법무로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17년~1924년 - 최정식 메리다지방회 학무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최정식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활동 시기/일시 1939년 3월 - 최정식 코앗사 코알코스지방회 감찰위원 선임
몰년 시기/일시 1942년 6월 6일연표보기 - 최정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7년연표보기 - 최정식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용산리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멕시코 - 멕시코
활동지 멕시코 - 멕시코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 출신이다. 가계와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활동 사항]

최정식(崔正植)[1871~1942]은 1871년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용산리에서 태어났다. 1904년 멕시코 농장주들과 동양인 이민을 계약하고 한국에 온 영국인 존 메이어스(John G. Meyers)가 대륙식산회사를 경영하던 일본인 오니와 간이치[大庭貫一]와 손을 잡고 멕시코 노동 이민자를 모집할 때 지원하였다.

최정식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노동 이민 지원자 1,033명은 1905년 4월 2일 영국 선박 일포드호를 타고 인천을 출항하여 75일간의 항해 끝에 멕시코 유카탄주 살리나 크루즈(Salina Cruz)에 도착하였다. 멕시코 노동 이민자들은 20여 개의 에네켄 농장에 흩어져 노예 노동을 방불케 하는 4년 계약의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도 한인 단체를 조직하고 민족 운동에 헌신하였다.

최정식은 1909년 5월 미주 한인 사회의 대표적인 단체인 국민회(國民會)의 북미지방총회 산하 메리다지방회가 설립될 때 평의원에 선임되었고, 8월에는 대의원이 되어 1910년까지 활동하였다. 1911년 12월 와하케뇨의 에네켄 농장에 취업하여 와하케뇨로 이주하였고, 1912년 1월 미주 지역의 통합된 한인 단체인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와하케뇨지방회를 설립하고 법무로 선임되어 1913년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1917년 멕시코혁명이 발발하자 다시 메리다로 돌아와 메리다지방회에서 1924년까지 법무·서기·수전위원·학무 등의 책임을 맡았다.

최정식은 1925년 푸론테라지방회 주최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1939년 3월에는 코앗사 코알코스지방회 감찰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최정식은 1917년부터 1941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출연하는 등 이주 한인들의 민족의식 고취를 위하여 노력하다가 1942년 6월 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정식의 공적을 기려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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