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52
한자 趙南明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0년 9월 24일연표보기 - 조남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4일 - 조남명 「독립 선언서」 전달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6일~7일 - 조남면 주민 시위 참여 독려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일 - 조남면 「공주지방법원 판결문」 태형 90도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47년 7월 2일연표보기 - 조남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조남면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조남명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지도보기
묘소 조남명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조남명(趙南明)[1870~1947]은 1870년 9월 24일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조남명은 서울에서 3·1운동이 시작된 직후인 1919년 3월 4일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금당리의 유재경으로부터 「독립 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이에 전라북도 군산 지역과 서천군 일대에서 만세 시위를 계획, 진행하는 분위기에 고무되어 3월 6~7일 이틀 동안 화양면 구동리의 한백희와 최경진, 기산면 화산리(華山里)의 이경욱과 정희석 등에게 “학생들은 국사로 지금 군산경찰서에서 유치 취조를 받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수수방관하지 말고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서라도 함께 군산으로 건너가 만세를 부르자.”라고 시위 동참을 독려하였다.

이로 인하여 조남명은 3월 8일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으며, 압송되어 서천군 서천읍의 삼산리 장터를 지나면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1919년 4월 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았다. 조남명은 1947년 7월 2일 사망하였다.

[묘소]

조남명의 묘소는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남명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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