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51
한자 鄭海斗
영어공식명칭 Jeong Haedu
이칭/별칭 정순문(鄭順文),정해도(鄭海燾)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3년연표보기 - 정해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6년 3월 - 정해두 홍주의병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6년 5월 19일 - 정해두 홍주의진 후군장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06년 5월 25일 - 정해두 홍주의진 선봉장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정해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 정해두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성북리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지도보기
활동지 홍성 - 충청남도 홍성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홍주의병 후군장|선봉장

[정의]

개항기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해두(鄭海斗)[1863~1932]는 1863년(철종 14) 지금의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정해두는 1906년 홍주의병에 가담하였다.

홍주의병은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의 지휘 아래 1906년 5월 19일 충청남도 내포 지역의 요지인 홍주성을 점거하였다. 홍주성 점거 직후 홍주의진이 편제를 갖출 때 중군장 정재호, 선봉장 박영두, 좌익장 이상구, 우익장 신현두 등과 더불어 정해두는 후군장을 맡았다. 이어 홍주의진은 일제 군경의 압박에 대비하여 방어 태세를 갖추려고 25일경 편제를 일부 개편하였는데, 이때 중군장 이세영, 참모장 김상덕, 소모장 곽한일, 후봉장 박영두와 더불어 선봉장에 임명되었다. 1906년 5월 30일 서울에서 출동한 일본군의 공격으로 홍주성은 함락당하고 의진은 와해되었으며, 일본군에 붙잡힌 정해두는 모진 고문을 당하여 반신불수가 되었다. 정해두정순문(鄭順文)·정해도(鄭海燾)로도 알려졌으며, 1932년 사망하였다.

[묘소]

정해두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해두의 공적을 기려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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