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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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吾吉 |
영어공식명칭 | Yi Ogil |
이칭/별칭 | 이겸길(李謙吉),길형(吉衡)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다고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민영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4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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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3년 3월 - 이오길 의열단 거사에 쓰일 폭탄을 운반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6월 12일 - 이오길 예심 종결로 면소 처분 |
몰년 시기/일시 | 1943년 9월 12일![]()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출생지 | 다고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 |
거주|이주지 | 육도구 - 중국 랴오닝성 안둥현 룽징시 |
활동지 | 중국 - 중국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오길(李吾吉)[1894~1943]은 1923년 4월 8일 서천 다고리[현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에서 태어났다. 이주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20년대에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안둥현[安東縣] 육도구(六道溝)[현 룽징시]에서 활동하였다.
이오길은 1923년 3월 8일 의열단원이자 고려공산당원인 백영무(白英武)·홍종우(洪鍾祐)와 함께 의열 투쟁에 사용할 폭탄 6개를 평안북도 의주군 광성면 미륵동에 있던 백영무의 집으로 운반하였고, 3월 9일에는 홍종우로부터 건네받은 폭탄 10개와 문서를 육도구의 자택과 주변에 보관하였다. 또 3월 11일에는 의열단원이자 고려공산당원인 김시현(金始顯)과 함께 서울 효자동에 있던 조황(趙晃)의 집으로 폭탄을 보내는 등 주로 의열단이 사용할 폭탄 운반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자택에 보관 중이던 폭탄이 신의주경찰서에서 출동한 경찰에게 발각된 데 이어 3월 14일에도 두세 명의 동지와 함께 약간의 폭탄을 서울로 운반하다가 발각되었다. 이로 인하여 경기도경찰부에서 대대적인 검색에 들어가 의열단 거사 계획에 연루된 40여 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오길도 이때 조황 등과 함께 체포되어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폭발물취체벌칙과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 강도죄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었으나, 1923년 6월 12일 예심이 종결되면서 면소(免訴)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오길은 이겸길(李謙吉)·길형(吉衡)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으며, 1943년 9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오길의 공적을 기려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