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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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劉漢鍾 |
이칭/별칭 | 유한종(柳漢鍾),유동종(劉東鍾)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황사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민영 |
출생 시기/일시 | 1891년 5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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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유한종 예수교병원 사무원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5일 - 유한종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0일 - 유한종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21년![]() |
출생지 | 유한종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황사리![]() |
활동지 | 군산 시가지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유한종(劉漢鍾)[1891~?]은 1891년 5월 5일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황사리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유한종(柳漢鍾), 유동종(劉東鍾)이다.
[활동 사항]
1919년 서울에서 시작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여 군산, 옥구 지역에도 이르렀다. 당시 유한종은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현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예수교병원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예수교 계통의 군산영명학교[현 군산제일고등학교] 교사 이두열, 김수영, 박연세 등의 권유에 호응하여 만세 시위 운동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이두열의 부탁을 받고 예수교병원의 동료 이준명, 양기준, 김창윤, 양성도 등과 군산영명학교에 모여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 선언서」 7,000매를 등사판으로 제작하였다. 하지만 사전에 시위 계획이 누설되어 3월 5일 만세 시위를 계획하던 주도 인물 이두열, 김수영, 고석주, 송정헌, 박연세 등이 피체되어 군산경찰서에 끌려갔다. 그럼에도 3월 5일 당일 유한종은 양기준, 양기철, 전세종, 홍경천, 고준상 등의 동지들과 함께 그동안 준비한 「독립 선언서」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개정에서 시작한 시위대는 군산 시가지로 들어가 군산경찰서 앞까지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1919년 4월 20일 유한종은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여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유한종의 공훈을 기리어 2021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