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33 |
---|---|
한자 | 徐祥福 |
영어공식명칭 | Seo Sangbok |
이칭/별칭 | 서상복(徐相福),서상복(徐相復)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민영 |
[정의]
일제 강점기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서상복(徐祥福)[1906~?]은 1906년 2월 8일 서천에서 태어났다. 서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의 순천중학(順天中學)을 거쳐 1934년 4월 청산학원대학(靑山學院大學) 신학부를 졸업하였다. 1934년 8월에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하였다.
서상복은 1939년 5월 15일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동부대회에서 준비위원으로 선출된 데 이어 1941년에는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위원장을 맡았다. 1942년에는 세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출연하였으며, 1944년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 동부지방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광복 직전인 1945년 2월에는 미군에 입대하여 전략첩보국[OSS]의 기초 훈련을 받은 뒤 한반도 침투를 위한 ‘독수리 작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중국 시안[西安]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미군정청에 들어가 전남도청에 이어 서울 본청에서 재직하였다. ‘서상복(徐相福)’ 또는 ‘서상복(徐相復)’으로도 알려졌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서상복의 공적을 기려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