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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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在鳳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민영 |
출생 시기/일시 | 1887년 5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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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5일 - 문재봉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문재봉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6월 형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22년![]() |
출생지 | 문재봉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 |
활동지 | 문재봉 활동지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문재봉(文在鳳)[1887~?]은 1887년 5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삼산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서울에서 시작한 3·1운동 소식이 군산에 전하여지자, 예수교 계통의 군산영명학교[현 군산제일고등학교] 교사인 이두열, 김수영, 박연세와 고석주, 송정헌 등은 군산 장날인 3월 6일을 기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계획이 발각되어 3월 5일 주도 인물들이 군산경찰서에 끌려가게 되자, 3월 5일에 즉시 양기준, 양기철, 전세종 등이 그동안 준비한 독립 선언서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개정에서 시작한 시위대는 군산 시가지로 들어가 군산경찰서 앞까지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당시 문재봉은 전라북도 군산의 강호정(江戶町)에서 잡화상을 하고 있던 중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홍종억, 전봉신 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선언서」를 나누어 주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문재봉은 피체된 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6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을 거쳐, 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문재봉의 공훈을 기리어 202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