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24
한자 金鐸煥
영어공식명칭 Gim Takhwan
이칭/별칭 김탁(金鐸)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 8월 2일연표보기 - 김탁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 김탁환 서울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 시기/일시 1920년 3월 13일 - 김탁환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 선고
활동 시기/일시 1920년 4월 12일 - 김탁환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 기각
활동 시기/일시 1920년 5월 8일 - 김탁환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징역 5년형 확정
추모 시기/일시 2014년연표보기 - 김탁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군사리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지도보기
활동지 경성 - 서울특별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탁환(金鐸煥)[1884~?]은 1884년 8월 2일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10월 2일 경성[현 서울특별시]에 있던 김강(金剛)의 집에서 이경헌(李景憲)·한호범(韓鎬範) 등을 만나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협의하였다. 김탁환은 한호범을 ‘김영희’라는 이름의 순사로 위장하게 하여 이경헌과 함께 수창동에 살고 있던 유지 홍종욱(洪鍾郁)의 집에 보냈다.

한호범과 이경헌이 자신들의 신분을 순사라고 속이고 경성부 애국금수합위원(愛國金收合委員)이라는 사령서를 보여 주며 홍종욱에게서 군자금으로 모집하였고, 김탁환 등은 10월 4일에도 유사한 방법으로 경성부 공평동에서 이남종(李湳鍾)으로부터 군자금 2천 원을 모집하였다.

김탁환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3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4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이후 1920년 5월 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탁환김탁(金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탁환의 공적을 기려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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