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백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711
한자 李東伯
이칭/별칭 이종기(李鍾琦)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유승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6년연표보기 - 이동백 출생
수학 시기/일시 1879년 - 이동백 김정근 문하에서 판소리 공부
수학 시기/일시 1886년 - 이동백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도만리 희리산 용굴에서 득음
활동 시기/일시 1891년 - 이동백 공연 활동 시작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이동백 통정대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33년 - 이동백 조선성악연구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39년 3월 15일 - 이동백 경성 부민관에서 은퇴 공연
몰년 시기/일시 1949년 6월 6일연표보기 - 이동백 사망
출생지 이동백 출생지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도만리지도보기
성격 명창
성별
대표 경력 중고제 판소리 명창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 출신의 중고제 판소리 명창.

[가계]

이동백(李東伯)[1866~1949]은 1866년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도만리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이종기(李鍾琦)이다.

[활동 사항]

이동백은 1879년 김창룡과 함께 장항에 사는 김정근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그 후 1886년 종천면 도만리 뒷산 용굴에서 독공을 하여 득음하였다. 이동백이 독공한 용굴은 희리산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10m 위에 있다.

이동백은 1891년 무렵부터 공연 활동을 시작하였다. 창원부사의 부름을 받고 「새타령」을 불러 이름이 알려지자, 경상도 진주, 창원, 마산 등을 무대로 9년간 활동하며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1902년 서울로 올라와 영성문 안에 터를 잡고 살며, 원각사에서 소리하며 서울 무대를 장악하고, 김창환, 송만갑 등과 창극 운동에 참여하였다. 1906년 고종 앞에서 중고제 판소리 「새타령」을 불러 통정대부 벼슬을 받았다. 1933년에는 송만갑, 김창룡, 정정렬, 한성준 등과 함께 조선성악연구회를 조직하여 한국 전통 음악을 공연하고 전수하였다. 고종의 인산 때는 우리나라 명창 중 유일하게 조문 입궐이 허락되었다고 전한다. 1939년 3월 15일 경성 부민관에서 은퇴 공연을 하고, 부인이 살던 경기도 평택시 칠원동 새말에서 지냈다. 1949년 6월 6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동백의 「새타령」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였다. 2000년대 초반 서천군 시내버스 멈춤 벨 소리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서천군 출신 소설가 박경수이동백을 가리켜, “「적벽가」의 「새타령」 대목과 「춘향가」 중 「옥중비가」 대목의 귀곡성은 이동백의 특장으로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라고 평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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