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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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良彦 |
영어공식명칭 | Gim Yangeon |
이칭/별칭 | 선익(善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출생 시기/일시 | 15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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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김양언 진무공신 3등 녹훈 |
몰년 시기/일시 | 1627년![]() |
추모 시기/일시 | 1630년 - 김양언 충신 정려 |
출생지 | 안주 - 평안도 안주 |
사당|배향지 | 흥신사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진주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에 있는 흥신사에 제향된 조선 후기 무신.
[가계]
김양언(金良彦)[1583~1627]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선익(善益)이다. 할아버지는 김장련(金長諫)이고, 아버지는 김덕수(金德秀)이다. 아들은 김세호(金世豪)이다.
[활동 사항]
김양언은 1583년(선조 16)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덕수가 강홍립(姜弘立)의 천총(千揔)으로 있다가 심하전투에서 전사하자 김양언은 복수를 다짐하였다. 언제나 흰 옷과 흰 관 차림으로 군영에 머물면서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은 고아 300여 명을 모집하여 ‘복수병’이라 이름하고 여러 해를 변방에서 복무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양언은 도원수 장만(張晩)에게 자청하여 척후장이 되었으며, 안현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진무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이후 군기시주부와 태천현감에 제수되었다. 김양언은 1627년 정묘호란 때 안주를 수비하다가 전투 중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양언은 사망한 뒤 판중추부사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었고, 진흥군(晉興君)에 책봉되었다. 1630년(인조 8) 충신으로 정려되었고, 서천의 흥신사와 평안도 안주의 충민사(忠愍祠), 평양의 충무사(忠武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