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652
한자 鄭仁敎
영어공식명칭 Jeong Ingyo
이칭/별칭 인환(仁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74년 - 정인교 동몽교관 추증
추모 시기/일시 1887년 - 정인교 효자 정려
출생지 서천 - 충청남도 서천군
성격 효자
성별 남성
본관 온양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효자.

[가계]

정인교(鄭仁敎)[?~?]의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자는 인환(仁煥)이다. 정순붕(鄭順朋)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정은우(鄭殷遇)이다.

[활동 사항]

정인교는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부모의 말을 어긴 일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어린 나이에도 산에서 갖은 약초를 구하여 지극성성으로 간호하였고, 아버지가 사망하자 3년 동안 묘소를 지키며 방갓을 쓰고 움막에서 살았다고 한다.

정인교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홀로 된 어머니를 극진하게 봉양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에 걸렸을 때는 밤낮으로 어머니의 병이 낫기를 하늘에 빌며 정성껏 간병하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은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제철이 아니어서 구하기 어려운데도 사방으로 찾아다녔다. 정인교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 오르는 은어를 잡아 어머니에게 주자 어머니의 병세가 곧 나아졌다고 한다. 정인교는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도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866년(철종 3)에 지역 유림이 효행으로 추천하여 1874년(고종 11) 정인교는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1887년(고종 24)에는 정인교의 노비 충쇠(忠釗)가 어가 앞에서 격쟁(擊錚)하여 효자 명정이 내렸고, 1888년(고종 25) 정려문을 건립하였다. 이후 정려문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후손들이 지금의 서천군 판교면 복대리 산6에 이건하고 현판을 옮겨 와 달았다. 정인교 효자 정려문은 1986년 11월 보수되었으며, 1987년에 정려문 왼쪽에 정인교의 행적을 기록한 정려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