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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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滋鶴 |
영어공식명칭 | Yun Jaha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수환 |
추모 시기/일시 | 1888년 - 윤자학 효자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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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서천 - 충청남도 서천군 |
묘소|단소 | 윤자학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파평 |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효자.
[가계]
윤자학(尹滋鶴)[?~?]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윤광찬(尹光纘)이고, 할아버지는 윤서기(尹瑞基)이다. 아버지는 윤경진(尹敬鎭)이고, 동생은 윤자경(尹滋畊)이다.
[활동 사항]
윤자학은 어려서부터 성격이 온화하고 선량하며 부모를 극진하게 섬겨 주변의 칭찬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환으로 투병하던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여지자 윤자학은 자신의 왼손 손가락을 베어 피를 아버지 입에 흘려 넣어 3일을 더 살게 하였고,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는 3년간 묘소를 정성으로 살폈는데 이때 호랑이가 와서 윤자학을 보호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후 어머니 또한 병세가 위독하여지자 윤자학은 오른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어머니 입에 흘려 넣어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고 한다.
[묘소]
윤자학의 묘소는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에 있으며, 묘소 앞에는 윤자학의 정려비각이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윤자학의 효행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1888년(고종 25)에 윤자학을 효자로 정려하였다. 지금의 윤자학 효자 정려비각은 1917년에 중수한 것이며, 정려의 내력을 기록한 중수기는 윤여선(尹汝鮮)이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