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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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東倫 |
영어공식명칭 | Na Dong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수환 |
추모 시기/일시 | 1854년 - 나동윤 효자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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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막동리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막동리![]() |
거주|이주지 | 막동리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막동리 |
묘소|단소 | 나동윤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 산25-1 |
사당|배향지 | 나동윤 정려문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막동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자 |
본관 | 금성 |
[정의]
조선 후기 서천 출신의 효자.
[가계]
나동윤(羅東倫)[?~?]의 본관은 금성(錦城)이다. 충청남도 서천 지역에 세거하는 금성 나씨는 나봉(羅奉)의 후손으로 한림공파라 일컫는다. 나봉은 고려가 망하자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산성동으로 낙향하였으며, 이후 나봉의 후손들은 서천군에 세거하게 되었다. 나동윤 또한 나봉의 후손으로, 서천군 기산면 막동리에 세거하였다.
[활동 사항]
나동윤은 어릴 적부터 효심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고, 커서는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정성으로 간병하였다. 나동윤은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하여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어머니 입에 넣어 드려 회생시켰으며, 어머니가 설사병으로 고생하게 되자 얼음이 언 상황에서도 잉어를 구하여 드시게 함으로써 기력을 회복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는 장례를 치른 뒤에 고령의 나이임에도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묘소]
나동윤의 묘소는 서천군 기산면 신산리 산25-1에 있다.
[상훈과 추모]
고을 선비들이 나동윤의 효행을 조정에 알려 세금 면제의 특혜가 내렸고, 1854년(철종 5)에는 조정에서 나동윤을 효자로 정려하여 기산면 막동리 마을 중앙에 정려문이 세워졌다. 나동윤의 정려기문은 규장각학사 홍순형(洪淳馨)이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