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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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世 |
영어공식명칭 | Na Se |
이칭/별칭 | 연안군(延安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수환 |
출생 시기/일시 | 13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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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51년 - 나세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374년 - 나세 동지밀직사사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376년 - 나세 전라도상원수 겸 도안무사로 왜구 격퇴 |
활동 시기/일시 | 1380년 - 나세 해도원수로 진포에서 왜구 격퇴 |
몰년 시기/일시 | 1397년![]() |
묘소|단소 | 나세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나주 |
대표 관직|경력 | 병선조전절제사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던 진포에서 왜구를 격퇴한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나세(羅世)[1320~1397]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나중윤(仲允)이고, 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 아버지는 나수영(羅守永)이다. 형은 나위(羅位)·나계(羅桂)·나석(羅碩)이고, 동생은 나원(羅源)이다.
[활동 사항]
나세는 1320년(충숙왕 7)에 태어나 1351년(충정왕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의 침략을 격퇴하여 1363년 2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판도판서가 되었으며, 1374년 동지밀직사사로 있을 때 제주도의 목호(牧胡)들이 말의 공출을 거부하자 부원수가 되어 최영(崔瑩) 등과 함께 제주도를 평정하였다. 1375년(우왕 1)에는 밀직부사로서 서해도상원수 겸 도순문사가 되어 심왕(瀋王)이 원나라로부터 돌아와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소식에 대비하였다. 1376년 나세는 전라도상원수 겸 도안무사가 되었는데, 이때 부령현(扶寧縣)[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왜구를 크게 격파하였으며, 뒤이어 판개성부사가 되고 강화 등지에서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연안군(延安君)에 책봉되었다.
나세는 1380년 해도원수가 되어 최무선(崔茂宣)·심덕부(沈德符) 등과 함께 전함 100여 척을 이끌고 진포(鎭浦)[현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던 포구]의 장암진에서 최무선이 만든 화약과 화포를 실전에 처음으로 사용하여 왜선 500여 척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웠다. 나세는 조선 건국 후에도 병선조전절제사·참찬문하부사·도추포사를 역임하고 1397년(태조 6) 사망하였다.
[묘소]
나세의 묘소는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에 있다. 처음에는 후손들이 제단을 설치하였는데, 1956년에 단을 묘소로 만들었다.
[상훈과 추모]
1996년 서천군에서 금강하구둑 관광단지 내에 고려해도원수나세진포대첩비를 세워 나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