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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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川 許氏 |
영어공식명칭 | Yangcheon Heo Clan |
이칭/별칭 | 공암 허씨(孔巖 許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수환 |
본관 | 양천 - 서울특별시 양천구·강서구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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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창외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 |
세거|집성지 | 창외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 |
세거|집성지 | 산정리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산정리![]() |
묘소|세장지 | 허책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 |
성씨 시조 | 허선문(許宣文) |
입향 시조 | 허책(許策) |
[정의]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책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천군의 세거 성씨.
[연원]
양천 허씨(陽川 許氏)는 공암 허씨(孔巖 許氏)라고도 하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30세손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김수로왕의 세 아들 중 첫째 아들은 김씨 성을 이어 받아 김해를 관향으로 삼았고, 둘째와 셋째 아들은 어머니인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의 성을 이어 받아 각각 김해와 양천을 관향으로 삼았다. 양천 허씨 시조 허선문은 공암(孔巖)[현 서울특별시 양천구·강서구 일대]의 촌주(村主)로 있을 때 왕건과 견훤 사이에 전투가 발발하자 왕건 편에서 군량을 조달하였고, 왕건이 그러한 공을 가상히 여겨 허선문에게 공암을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공암을 본관으로 삼아 공암 허씨로 불렸는데, 1310년(충선왕 2) 공암의 지명이 양천(陽川)으로 바뀌어 양천 허씨가 되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 거주하는 양천 허씨는 허관(許冠)을 파조(派祖)로 하는 판도좌랑공파(版圖佐郞公派), 허광(許磺)을 파조로 하는 제양군파(齊陽君派), 허명(許明)을 파조로 하는 좌랑공파(佐郞公派), 허집(許土+集)을 파조로 하는 승지공파(承旨公派) 후손들이 주로 세거하고 있다.
[입향 경위]
양천 허씨 서천 지역 입향조는 허책(許策)이다. 허책은 사촌 동생 허균(許筠)이 1618년(광해군 10) 반란을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참형을 당하자 화를 피하여 처가가 있던 지금의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로 피난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창외리를 중심으로 기산면 산정리와 화양면 봉명리·고마리·금당리 등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서천군에 거주하는 양천 허씨는 총 409명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서천군 양천 허씨 관련 유적으로는 서천군 화양면 창외리에 입향조 허책의 묘소과 허집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