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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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州 趙氏 |
영어공식명칭 | Yangju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수환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8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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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756년![]() |
본관 | 양주 - 경기도 양주시 |
입향지 | 신송리 -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신송리![]() |
묘소|세장지 | 조정빈 묘소 -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판교리 산3-35![]() |
성씨 시조 | 조잠(趙岑) |
입향 시조 | 조정빈(趙鼎彬) |
[정의]
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정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천군의 세거 성씨.
[연원]
양주 조씨(楊州 趙氏)는 조잠(趙岑)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조잠은 고려 때 양주(楊州)[현 경기도 양주시]에서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으며, 이후 후손들이 양주를 관향으로 세계를 이었다. 조잠의 증손자인 조계생(趙啓生)·조말생(趙末生)은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세종 대에 조참관과 영중추원사를 지냈으며,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90여 명을 배출하는 등 양주 조씨는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충청남도 서천군에는 조말생(趙末生)을 파조로 하는 문강공파(文剛公派) 후손들이 주로 세거하였다.
[입향 경위]
양주 조씨 서천 지역 입향조는 좌의정 조태채(趙泰采)의 맏아들인 조정빈(趙鼎彬)[1681~1756]이다. 한성부에 거주하던 조정빈은 1721년(경종 원년) 임인사화로 인하여 아버지 조태채와 함께 유배되었다. 조태채는 1722년 유배지에서 사사되었고, 조정빈은 1725년 동생 조관빈(趙觀彬)·조겸빈(趙謙彬)과 함께 유배가 풀려 귀향하였다. 이후 조정빈은 동생 조겸빈의 맏아들 조영극(趙永克)[1718~1777]을 양자로 들여 후사를 이었고, 조영극과 함께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신송리에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현황]
서천군의 양주 조씨는 대부분 고향을 떠나 외지로 이주하였고, 서천에는 몇 가구만 남아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서천군 양주 조씨 관련 유적으로는 서천군 판교면 판교리 산3-35에 입향조 조정빈과 부인 기계 유씨의 합장묘가 있다. 서천군 서천읍 구암신송로84번길 12-1[구암리 152-7]에는 조정빈이 1735년에 이장한 조태채의 묘소가 있으며, 서천읍 구암리 120-1에는 1851년에 세운 조태채의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