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91 |
---|---|
한자 | 庇仁邑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비인로 216[성내리 544-1] 일원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비인읍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비인읍성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
현 소재지 | 비인읍성 -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비인로 216[성내리 544-1] 일원![]() |
성격 | 읍성 |
양식 | 석축 |
크기(높이,길이,둘레) | 약 1,500m[둘레] |
소유자 | 서천군 |
관리자 | 서천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건립 경위]
비인읍성(庇仁邑城)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읍성은 석성이고, 둘레가 1,933척 8촌[약 586m]이고, 선덕 5년 청화역 동쪽에 축조하고 비인현의 치소를 옮겼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선덕 5년, 즉 1430년 당시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문종실록(文宗實錄)』 문종 1년(1451) 9월 5일자 기록에 따르면, “비인현 읍성은 주위가 1,933척 8촌이고 높이가 평지는 11척[3.3m], 높은 곳은 9척[2.7m]이며, 여장의 높이는 3척[0.9m], 적대가 5개소, 문이 3개소에 그중 하나는 옹성이 없다. 여장은 423개이며 성 안에 우물이 3개소, 해자는 둘레가 2,152척[652m]인데 간혹 막혀 있다.”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에는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3,505척[약 1㎞]에 높이는 12척[3.6m]이며, 안에 세 개의 우물이 있고, 바다 입구까지는 1보(步)이다. 세종 3년(1421)에 여러 고을의 군정(軍丁)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치]
비인읍성은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비인로 216[성내리 544-1] 일원에 있다. 비인읍성은 낮은 구릉 지대 두 곳을 연결하여 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전기부터 비인현의 치소가 있던 곳으로 월성산과 태매산이 밀집한 산악 지형에서부터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구릉에 해당한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으로 해안에 접하여 있으며 충적지 한가운데에 있다.
[형태]
비인읍성은 둘레는 약 1,500m이고 석축의 읍성이다. 남벽은 210m 정도이고 남벽과 서벽은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벽은 토루가 잔존하지만 면석은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 성벽의 높이는 외벽 3~4m이다. 동벽의 길이는 400m 정도이고 일정 구간은 도로의 개설과 민가의 축조로 파괴되어 있다. 잔존 성벽은 4~5m이다. 북벽은 동벽과 직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는 250m이다. 비인읍성 중에서 잔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성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사용하여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외벽의 높이는 7~8m이다. 서벽은 북벽과 둥글게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는 550m이다. 서벽의 중간 부분은 민가의 축조와 통로의 개설로 파괴되어 있다. 서벽은 토루가 잔존하여 외벽 높이는 4~6m이다. 소하천이 읍성을 관통하지만 수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우물은 3개소가 있었다고 하지만 형체는 확인할 수 없다. 『여지도서(興地圖書)』에 따르면 다수의 공공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현황]
비인읍성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비인읍성 성벽은 북벽과 동벽의 잔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며 나머지 남벽과 서벽은 훼손이 매우 심하다. 객관, 아사, 현사, 향청, 훈련청, 작청 등이 비인읍성 내에 건립되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문은 동문과 서문이 도로 개설로 파괴되어 있어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비인읍성 안 동쪽에는 비인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비인읍성은 고려 후기~조선 전기 왜구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조선 시대 세종 연간 축조된 것이다. 비인읍성은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읍치의 발전 과정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으며 비인의 중심지 기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