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500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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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舒川 芝山里 遺蹟 |
영어공식명칭 | Historic Site Related to jisan-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지산리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고대/삼국 시대/백제,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성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 서천 지산리 유적 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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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2월 10일~2003년 7월 14일 - 서천 지산리 유적 발굴 조사 |
소재지 | 서천 지산리 유적 -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지산리![]() |
성격 | 생활 유적 |
지정 면적 | 11,957㎡ |
소유자 | 충청남도 서천군 |
관리자 | 충청남도 서천군 |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지산리에 있는 초기 국가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생활 유적.
[위치]
서천 지산리 유적(舒川 松內里 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지산리 일원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서천 지산리 유적은 서천-공주간 고속도로 건설 구간[6-1구간]에 대한 조사로 확인된 유적이다. 충남발전연구원에서 2002년 시굴 조사를 진행하였고, 시굴 조사의 분류 방법에 따라 1지구 4,245㎡과 2지구 7,712㎡로 구분하여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는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2003년 2월 10일부터 2003년 7월 14일까지 약 150일간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원삼국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주거지 75기, 고려 시대 주거지 4기, 건물터 1기가 확인되었다.
[형태]
서천 지산리 유적이 있던 곳은 당시 산림 지역이었고 하단부의 경작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지형 훼손은 덜한 상태였다. 높이 77.8m의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쪽의 Ⅰ지구와 남쪽의 Ⅱ지구로 구분되나, 산림 지역으로 연결되는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고 유적의 성격도 유사하다고 판단된다. 유적 내에서는 조사를 통하여, 원삼국 시대부터 백제 시대 주거지 75기, 고려 시대 주거지 4 기, 건물터 1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대부분 생활 용기로 계형토기[鳥形土器], 반, 발형토기(鉢形土器), 시루, 완, 원저단경호(圓底短頸壺), 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 직구소호(直口小壺), 이중구연호(二重口緣壺) 등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형태 및 출토 유물을 통하여 볼 때 초기 국가 시대부터 삼국 시대에 걸쳐 조성된 유적이다.
[Ⅰ지구]
Ⅰ지구에서 확인되는 주거지는 조사 범위의 북쪽에 해당되며, 높이 80m 선상부에서 북동쪽으로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며 흘러내린 지형의 동북향 사면 하단에 유구의 중복 없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
[Ⅱ지구]
Ⅱ지구에서 확인된 주거지 70기는 높이 727m 산봉우리와 동쪽의 높이 77.8m의 산봉우리를 연결하는 선상부를 중심으로 남서향 사면을 포함한 지형이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모두 방형과 장방형으로 확인되는데, 방형 계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형 경사에 의한 지표면의 유실과 유구 간의 중복으로 인하여 주거지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이다. 주거지는 대체적으로 중·소형의 규모가 많이 확인되며, 면적은 10~15㎡ 내외이다. 내부 시설로는 부뚜막 시설과 바닥 시설, 그리고 벽체 시설이 확인되는데, 주거지 내부에서 1기 혹은 2기의 부뚜막 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부뚜막은 벽체를 따라서 존재하거나 한쪽 벽면의 중앙부에 아궁이와 연통 시설만 되는 보조 부뚜막 시설이 확인된다. 특히 화재로 인한 폐기로 추정할 수 있는 주거지는 모두 23기가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서천 지산리 유적은 서천 지역 재지 세력의 마한에서 백제로의 변화 양상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