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면 미군 폭격 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500448
한자 板橋面 美軍 爆擊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대백제로 2078[판교리 407-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 - 6·25전쟁 발발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9월 10일연표보기 - 판교면 미군 폭격 사건 발생
발생|시작 장소 판교면 임시 장터 -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대백제로 2078[판교리 407-1]지도보기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미군

[정의]

1950년 9월 10일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에서 발생한 미군 폭격 사건.

[역사적 배경]

6·25전쟁 당시 미군은 군사 작전을 수행하면서 수색보다 탱크 공격과 폭격을 우선 실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곳곳에서 민간 시설과 군사 시설을 구분하지 않은 미군의 공중 폭격에 의하여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경과]

1950년 9월 10일 점심 즈음, 임무를 마치고 귀대하던 미국극동공군사령부 18전폭단 67전폭대대 소속 F-51 2기가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판교국민학교 뒤편 임시 장터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을 보고 15분간 기총 사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장을 보러 온 1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였다. 폭격이 이루어진 장소는 오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서천 주민 외에도 인근 충청남도 부여, 보령 지역 주민들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판교리 지역은 인민군 점령 지역이었으나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이어서 인민군 부대 및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판교면 미군 폭격 사건(板橋面 美軍 爆擊 事件)은 민간인 활동 지역에서 최소한의 안전 조치도 하지 않은 과도한 공격이었다.

[결과]

2010년 6월 29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미군의 기총 사격으로 1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이 사과나 피해 보상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정부가 협상에 나설 것을 권고하였다.

[의의와 평가]

6·25전쟁 당시 미군 폭격은 북한에 집중되었으나, 남한에서도 많은 폭격이 이루어져 민간인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 판교면 미국 폭격 사건은 국가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한 민간인들의 비참한 현황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다. 판교면 미군 폭격 사건은 이념과 관계 없는 인권과 인도주의에 관한 문제로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며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할 ‘민간인 학살’ 문제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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